평양 주민이 나와 영어로 北 일상생활·문화 소개하는 채널 등장
보안 당국 "시청은 큰 문제 없지만 댓글·구독·공유·후원 등은 국보법 위반 소지"
법원은 이적표현물 판정에 엄격한 요건 요구하는 추세

북한 평양 주민의 일상생활을 소개하는 듯한 브이로그(VLOG·개인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를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이 잇따라 개설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시작한 '올리비아 나타샤-유미 스페이스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문 약칭) 데일리', '샐리 파크스' 같은 유튜브 채널은 평양 주민이 등장하는 채널이지만 유창한 영어로 진행된다.

각각 20대 여성 '유미', 11살 소녀 '송아'가 나와 평양의 일상, 북한의 문화와 명소 등을 소개한다.

동영상에서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단 유미는 '개성고려홍삼' 커피를 타 마시는가 하면, '통일거리운동쎈터'에서 PT(개인 트레이닝)도 받는다.

유미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이 건물을) 인민을 위한 봉사기지로 전환하고 통일거리운동쎈터로 명명하도록 해주셨다"는 선전용 발언도 빠트리지 않는다.

어린이 유튜버인 송아도 매끄러운 영어로 새해 인사를 건넨다.

송아는 "저희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무상으로 살림집을 배정받고 송화거리에 이사했습니다"라면서 "모든 것은 국가에서 무상으로 준다"고 강조한다.

유튜브뿐 아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길이가 짧은 쇼트폼(short form)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도 평양의 풍경을 보여주는 계정이 등장했다.

'북한 평양에서의 밤 산책'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조회 수 약 230만회를 기록했다.

통상적인 북한의 체제 선전물과 달리, 주민의 평범한 생활상을 담은 듯한 이런 동영상을 시청하고 이를 공유할 경우에도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을까?
[팩트체크] 북한 유튜버 동영상을 공유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북한은 이미 2003년 대외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개설해 운영하는 등 인터넷을 체제 선전에 활용해왔다.

하지만 2019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브이로그 영상들은 보다 간접적으로 선전 메시지를 담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들 채널은 북한 주민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채널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CNN은 최근 전문가들이 이들 채널을, 북한의 고위층 주도로 고안된 체제 선전 캠페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평범한 북한 주민들은 유튜브 등에 접근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북의 일반 주민들은 당국의 검열·통제가 가능한 독자적 인트라넷인 '광명망'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별도의 허가 없이는 유튜브 같은 사이트에는 접속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이런 브이로그가 기존의 체제 선전물과 문법은 달라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사실상 같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연구학회가 발행한 논문 '북한은 유튜브를 통해 무엇을 말하는가?: 주제 분석과 텍스트마이닝 기반 분석을 중심으로'(박성호·이화준·김용호 저, 2021년)에 따르면, 북한은 대외 인식 변화를 위해 브이로그라는 일상화 중심의 메시지로 전환했으나 '당과 수령의 영도를 바탕으로 현대화되고 있는 평양'이라는 대외 선전의 핵심 메시지에는 변화가 없다고 분석했다.

효율적인 체제 선전을 위해 뉴미디어와 새로운 영상 문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전략은 실제 일정 부분 북한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유미 스페이스' 채널은 구독자가 1만2천600여명, '샐리 파크스'는 2만4천여명에 각각 달하고, 대부분 영어로 된 댓글 중간에는 한국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댓글도 더러 발견되고 있어 적절한 이용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안 당국에 따르면 북한의 브이로그 영상을 단순히 시청하는 것만으로는 사실상 처벌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고, 해당 영상을 공유하거나 해당 채널을 구독하고, 슈퍼챗(유튜브 시청자가 유튜버에게 보내는 후원금)을 보내는 행위는 국보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국보법 제7조(찬양·고무 등)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북한)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사람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할 경우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또 5항에선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을 찬양·고무·선전하는 내용의 문서나 도화, 기타 표현물 형태의 이적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취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브이로그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기고, 해당 채널을 구독하는 행위는 북한 체제에 대한 찬양·고무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특히 공유하기는 배포에 해당하기 때문에 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가장 위험한 행위는 슈퍼챗 보내기다.

국보법 제9조(편의제공) 2항은 반국가단체에 금품,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다솔 법률사무소의 김운용 변호사는 "채널의 운영 주체가 북한 당국이라고 한다면 (슈퍼챗을 보내는 행위가) 북한 정부 기구에 돈을 보낸 게 되기 때문에 9조에 저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동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처벌되진 않는다"면서도 "댓글을 달거나 적극적인 동조를 한다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적용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국보법 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유튜브 채널의 운영 주체, 영상의 구체적인 내용 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일반적으로 답변하긴 곤란하다"고 밝혔다.

[팩트체크] 북한 유튜버 동영상을 공유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법무부 설명처럼 실제 보안 당국이 국보법을 적용해 기소하려면 이런 영상물이 '이적표현물'이란 판정이 전제돼야 한다.

북한의 브이로그들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체제 선전을 은근하게 녹여내는 방식으로 제작돼 이적성 판단이 쉽지 않다.

아직 북한 브이로그에 댓글을 달거나 이를 공유해 기소된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다.

보안 당국은 통상 수사 단계에서 이적표현물임을 판정하기 위해 학자·교수 등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한다.

경찰 관계자는 그러나 "아직 이런 브이로그 영상들을 이적표현물로 간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2년에도 개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국보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기소된 사례가 있다.

당시 사회당원 박정근(25)씨는 트위터상에서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글을 리트윗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의 변호인 측은 "박씨는 이적표현물을 게재할 목적이 아니라 트위터에 올라온 북한 찬양 글을 조롱하고 풍자하려는 단순한 목적으로 리트윗한 것일 뿐"이라고 변호했다.

김운용 변호사는 "단순 시청이라고 해도 인터넷은 모든 사용자의 기록이 남는 매체이기 때문에 추적하려면 다 추적할 수 있다"면서 박씨 사례를 보면 기소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안 당국이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해 기소가 이뤄진다 해도 실제 법정에서 이적표현물로 인정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1991년 국보법 개정 이후 대법원의 판례들을 살펴보면 이적표현물 인정에 상대적으로 높은 장벽을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의 2010년 판례는 이적표현물이 되려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봤다.

박정근씨의 경우도 2014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팩트체크] 북한 유튜버 동영상을 공유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국보법을 둘러싼 오랜 논란의 배경에는 이 법의 모호성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비판이 쏟아진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오래전부터 국보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폐지를 주장해왔다.

실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폐지가 추진됐지만 매번 무산됐다.

지난해에는 헌법재판소가 국보법 7조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민변 사법센터 소장 장유식 변호사는 "이런 사안(북한의 브이로그)으로 형사 처벌을 운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공안 당국이 문제를 걸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 유튜브에 댓글을 다는 행위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 소지도 있다.

이 법 제9조2(남북한 주민 접촉)의 1항은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 장관에게 미리 신고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이효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북한 유튜브를) 단순 시청하는 것은 남북교류협력법 접촉 신고 미(未)대상이라 처벌 대상 아니다"라면서도 "댓글 등을 북한과 주고받을 시 신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국보법을 적용하든,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하든, 시청에만 그치는 것이 안전하다는 얘기다.

[팩트체크] 북한 유튜버 동영상을 공유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북한 선전물에 대한 대처를 처벌 등 규제에서 교육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도 북한이 뉴미디어를 활용한 체제 선전을 계속 확장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동국대 북한연구소 하승희 교수는 '북한 유튜브 대외 선전매체 활용 양상' 논문(2020년)에서 북한이 보편 국가로서의 대외 인식 전환을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매체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튜브, 틱톡 등을 활용하면 저비용으로 선전·선동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이 이런 영상물이 프로파간다(정치선전)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으로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북한이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이런 흐름은 이미 거스를 수가 없다"면서 "국민들이 북한의 영상물을 스스로 보고 판단할 수 있게끔 사이버 안보 교육을 강화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운용 변호사도 "사실상 (북한의 영상물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처벌하기보다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제정돼야 한다고 본다"는 의견을 내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