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 둔화’를 공식화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 공식 채널 격인 기획재정부의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2월호에서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 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됐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줄곧 “경기 둔화가 우려된다”고 하다가 지난달에는 “경기 둔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며 위기감을 높인 뒤 이제 ‘경기 둔화’라고 인정한 것이다.

정부 진단이 어떻든 간에 한국 경제가 어렵고 경기가 불황 국면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재부는 2022년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과 소비가 꺾인 점을 주로 거론했지만 대부분 지표가 다 나쁘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수출은 위축된 반면 고공 행진하는 국제 에너지 가격에 고환율까지 겹쳐 무역적자는 심각하게 커지고 있다. 지난달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127억달러)를 기록한 무역적자는 이달 10일까지 176억달러로 커지면서 지난해 연간 적자의 37%에 달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도 전년 동기 대비 5.2% 오르며 전달(5%)보다 더 상승해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두 달 만에 다시 1300원대로 올라선 원·달러 환율은 물가 상승을 더 부채질할 공산이 크다. 나라 밖을 봐도 호전 기미가 안 보인다. 미국도 예상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중앙은행(Fed)이 3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주식시장은 바로 약세를 보였고, 달러 가치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개전 1년이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그대로여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에 따른 대외 여건도 계속 불안정하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속에 기업과 가계는 누가 뭐라지 않아도 허리띠를 더 죌 수밖에 없는 만큼 지금 중요한 것은 정부 역할이다. 물론 무역적자를 단시일에 확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 유도 등 내수 기반 확충은 정부 의지와 역량에 따라 개선 여지가 작지 않다. 더구나 경기 둔화가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정부도 잘 알고 점층적으로 경고해온 만큼 가능한 정책 카드를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전 정권과 비슷한 공공요금 억제책에 기대는 소극적 대응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규제 혁파로 서비스산업부터 활성화하고, 건설 투자의 유인책도 더 강구할 때다. 국회를 상대로 법인세·상속세 감세와 연구개발 등 투자세액공제의 확대 필요성도 설득해야 한다. 노동 개혁의 조기 성과 내기도 필수다. 정부는 경기 진단이나 하고 논평하는 기관이 아니다. 해법을 찾고 앞서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