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고슬 과육 단단하고 향 좋아 수출용으로 기대"
100년의 한반도 딸기 역사…설향 앞세워 국산화 97.8% 달성


[※ 편집자 주 = 각종 콘텐츠 플랫폼에서 '먹방', '맛집'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요식업계는 자영업 태동기, 프랜차이즈 시대, 노포·맛집 유행기를 지나 이제는 어떤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지는 '식재료 시대'에 왔습니다.

연합뉴스는 농도(農道) 전북에 자리한 농촌진흥청과 함께 국내 우수 식재료(농축산물)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생산물, 생산자, 연구자의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현업에 있는 셰프와 식음업계 전문가들의 솔직한 식재료 리뷰를 담아내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계획입니다.

코너 제목은 '좋은 식재료를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의미로 호식탐탐으로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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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식탐탐] ③ 여름에도 먹는 우리 딸기 '고슬'
'오늘 수확한 딸기를 네가 보았으면 했는데. 테이트(마티 잉골드)씨가 거의 5갤런이나 되는 딸기를 수확해서 내가 어린 여학생들을 딸기잔치에 초대했다.

(중략) 딸기는 이곳에서 나는 토종식물은 아니지만 아주 잘 자란다.

테이트 부인이 약 2년 전에 (딸기 모종) 50개를 주문했었고, 우리 선교부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전 선교사들에게 딸기를 공급해 오고 있다.

' - 미국 장로교 선교사 랭킨의 편지(1907년 5월26일) 중

딸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보급된 시점은 1900년대 초로 추정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발간한 '농업기술길잡이-딸기' 등 문서 자료를 살펴보면 '딸기 도입 시점은 20세기 초이고,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도만 기술돼 있다.

한참 일본에서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니 딸기 모종도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지만, '추정'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쉬운 것은 역사 기록에는 일본의 누가, 언제, 어떻게 딸기를 한반도에 들여왔는지 정확하게 명시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농업연구기관에도 기록이 없으니 찾을 길이 만무하던 차에 한국전통문화의전당 송영애 박사의 논문 '선교사 기록에 나타난 전주의 풍속 - 마티 잉골드의 자료를 중심으로'(2021·전북학연구 제4집)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송 박사는 논문에서 전주에 파송된 미국 장로교 선교사 랭킨과 마티 잉골드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분석해 당시 전주의 풍속을 조명했다.

1907∼1911년 전주기전학교 교장을 지낸 랭킨은 이 편지에서 1905년 의료 선교를 하고 있던 잉골드 선교사가 안식년을 마치고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딸기 모종 50개를 가져왔다고 썼다.

편지 후반부에는 또 딸기 모종을 전주 선교부뿐 아니라 전국 선교부에 보냈다는 내용도 나온다.

잉골드가 사역하던 의료기관은 후에 전주예수병원이 됐다.

전주예수병원 자리 건너편에 자리한 딸기밭은 1950년까지 '산 너머 딸기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지역 주민의 나들이 장소로 사랑을 받았다.

랭킨 선교사의 편지를 소개하는 이유는 전주가 한반도 딸기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존 기록을 보면 이미 여러 일본인이 딸기 모종을 한반도로 가져와 제과점 등에서 활용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역사 기록으로써 명확하게 딸기가 국내에 들어온 것이 1905년 9월이라는 점을 기억하고자 함이다.

미국에서부터 잉골드 선교사의 노력으로 우리는 110여 년간 겨울부터 봄까지 제철 딸기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딸기의 등장은 한반도에서 꽤 환영을 받았던 모양이다.

잉골드와 랭킨 선교사의 기록에는 종종 딸기를 수확해 제자인 여학생들과 딸기 잔치를 벌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기야 빨간색 빛깔이 매력적이고, 달콤한 맛에 씨알 굵은 딸기는 특별히 요리하지 않아도 맛이 좋았을 것이다.

고영 음식문헌학자는 "1900년대 이전에도 한반도에 '딸기'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 '딸기'는 풀에서 맺히는 '뱀딸기', 나무에서 열리는 '산딸기', 멍석딸기라 불렸던 '복분자'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면서 "전에 없던 밭딸기, 양딸기가 막 한반도에 퍼질 때 사람들은 그것이 이전에 딸기라고 일컫던 것과는 다른 품종임을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여러 기록이 증명하는바 한반도의 딸기는 오랫동안 일본 품종이 지배종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호식탐탐] ③ 여름에도 먹는 우리 딸기 '고슬'
이 추세는 2010년대에 들어설 때까지 지속했다.

약 100년간 한반도의 딸기밭을 장악한 품종은 일본의 '아키히메'(장희)와 '레드펄'(육보)이었다.

판도를 바꾼 것은 국내산 대표 딸기 품종인 '설향'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현 딸기연구소)이 2005년 개발한 설향은 당도가 10.4브릭스로 좋고, 과실 크기가 컸다.

무엇보다 겨울철 기형과율이 적고, 딸기 재배에 치명적인 흰가루병에 강해 농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설향의 등장으로 2005년 당시 9.2%에 불과했던 국내 품종 보급률은 2010년 61.1%까지 치솟으며 외국 품종을 역전했다.

이후 2015년에는 국산화율이 90%를 넘어섰고, 지난해 9월에는 역대 최고치인 97.8%를 기록했다.

설향이 평정한 우리 딸기 시장은 최근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설향이 워낙 맛이 뛰어나고 재배하기도 좋지만,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화하면서 딸기 시장의 판도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신세계, 롯데, 마켓컬리 같은 유통업체들도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품종을 패키지로 묶어 '딸기 취향 찾기' 상품을 출시했다.

국내 품종 점유율 2위인 '금실', 당도가 12.8브릭스에 달하는 '죽향', 쉽게 물러지지 않아 유통성이 강점인 수출용 '매향', 프리미엄 딸기인 킹스베리와 두리향, 장희 등으로 구성된 패키지 상품을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다.

그중 눈에 띄는 품종은 딸기가 나지 않는 여름에도 수확이 가능한 '고슬'이다.

봄이 제철인 딸기는 이미 시설재배를 통해 겨울철(12∼2월)이 제철인 과채로 바뀌게 됐다.

고슬은 노지 딸기의 수확이 끝난 뒤인 단경기(6∼11월)에도 수확이 가능한 품종이다.

고슬 보급이 확산하게 되면 딸기는 명실상부 '사계절 과채'로 거듭나게 된다.

고슬을 육종한 이종남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관은 "고슬은 일반 딸기보다 두 달 정도 이른 9월부터 수확이 가능하고, 이듬해 7월까지 수확할 수 있다"면서 "고온 환경에서도 크기가 20g에 달하고, 당도도 10브릭스를 유지하면서도 과육 역시 단단한 것이 특징"이라고 고슬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 연구관은 또 "고슬은 미국 품종인 알비온과 설향을 교배해 만들어 알비온의 경도, 향, 산미가 좋은 특징을 물려받았다"며 "특히 외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강도와 향이 강한 것이 장점으로 단경기에도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전 세계에 수출이 가능한 품종"이라고 덧붙였다.

[호식탐탐] ③ 여름에도 먹는 우리 딸기 '고슬'
고슬의 최대 장점은 단경기에 딸기를 출하할 수 있어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농진청은 2016년 고슬 개발을 마치고, 2019년부터 농가 보급을 시작했다.

경북 김천의 감로영농조합법인 고성택 대표는 "고슬이 모종 기르기가 힘들고, 꽃이 많이 달려 꽃 따주기와 과실 따주기를 해줘야 해 재배하기가 조금 까다롭지만, 7월 정식 후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철까지 장기수확이 가능해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다"면서 "수확량 대부분을 홍콩, 베트남,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두바이 등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일반 딸기의 두 배 정도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이어 "지난해에는 1㎏당 3만5천∼4만원의 가격이 형성됐다"면서 "우리 영농조합 농가들의 반응이 좋아 앞으로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푸드라이터인 정재훈 약사는 "고슬은 크고, 단단하고, 향이 열대과일과 파인애플, 버터 향 등 향이 좋은 것이 특징"이라며 "호텔 딸기 뷔페에 두면 가장 인기 있을 딸기"라고 품평했다.

그는 "아마도 모본으로 사용된 알비온 품종의 영향이 이런 특징을 만들어낸 것 같다"며 "지퍼락이나 비닐봉지에 딸기 열 개를 넣어두고 한두 시간 뒤에 냄새를 맡아보면 발효 버터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런 향기 덕분에 고슬은 솔티드 캐러멜 소스와 곁들여 먹을 때 향기가 잘 어울리면서도 톡톡 튀는 산미가 도드라져 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치즈, 크림, 버터와 같은 다른 식재료를 곁들이면 다른 품종과 차별화된 고슬의 매력이 돋보인다"며 "과육이 단단해서 요리에도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호식탐탐] ③ 여름에도 먹는 우리 딸기 '고슬'
(도움 주신 분들 : 박진우 농진청 홍보팀장, 김승호 주무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