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보다 의대"...주요대 반도체학과 합격자 대다수 이탈
2023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에서 서울 주요대 반도체학과에 합격한 학생들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워 관련 학과 증원까지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합격생들은 의대 등 타 계열로 이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7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최근 끝난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등 주요 4개 대학 중 대기업 취업 연계가 가능한 반도체학과 등록 포기율은 모집인원 대비 155.3%로 집계됐다.

4대 대학 반도체학과의 정시 모집인원은 총 47명이었는데 73명이 타 대학 등록 등을 이유로 이탈한 것이다.

이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자연계열 전체 등록 포기율(33.0%)의 4.7배 수준이다.

계약학과의 경우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취업이 보장되기 때문에 의약학계열과 함께 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인데, 타 대학 의약학계열과 중복 합격한 경우가 많아 대규모 이탈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학과가 있는 서울지역 한 대학의 입학처장은 "이 과에 지원하는 학생의 경우 (성적이 최상위권이므로) 정시에서 세 군데를 쓸 때 의약학계열이나 서울대를 쓰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대규모 이탈이 부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모집에 13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최초 합격자 전원은 등록을 모두 포기했고 추가합격을 통해서도 3명이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된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11명 정원에 8명(72.7%)이,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정원에 8명(80.0%)이 등록을 하지 않았다.

특히 SK하이닉스와 연계된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44명(275.0%)이 등록을 포기했는데, 모집인원(16명)의 3배 가까운 인원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종로학원은 "정부정책과 대기업 연계 등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관련학과는 의약학 계열, 서울대 이공계 등에 밀리는 구도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이전부터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종로학원 분석을 보면 이번에 합격자 전원이 이탈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경우 2022학년도 정시에서도 같은 현상(22명 선발에 추가합격이 37명)이 발생했다.

이같은 이탈은 결국 반도체 분야 대기업에 입사하더라도 의사만큼의 연봉과 안정성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 반도체 관련학과 교수는 "의대의 경우 수입을 보장하는 면허가 나오는 셈이고, 고등학교 때의 성적으로 평생 수익을 확정지을 수 있는 면이 있다"며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몸값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미국보다 덜 하고 의사들의 보장된 수익보다도 약하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 입사를 전제로 한 계약학과 진학이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선택을 제약하는 장애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학과가 있는 한 대학 관계자는 "학생들이 한 곳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학교에 다니면 계약된 기업에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데 그것이 혜택이 아니라 선택지가 좁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지역 대학의 반도체학과 한 교수는 "인력양성은 장기전이다"라며 "정부에서 반도체 관련 분야를 강조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반도체 인재를 키우는 학교들이) 이번 일에 사기가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아기자 twilight1093@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