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개입·해킹 뭐든 된다"…건당 200억 받는 여론조작 기업

국제 탐사보도 컨소시엄, 이스라엘 '팀 호르헤' 잠입 취재
"세계 각지서 30여개 선거 관여…주요 인사 소셜미디어 계정 해킹도 손쉬워"

세계 각국에서 30건이 넘는 주요 선거에 개입하고 주요 인사들의 정보를 해킹했다는 이스라엘 '여론조작 기업'의 실체를 파헤친 외신 보도가 나왔다.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 비영리기구 '금지된 기사들'(Forbidden Stories) 주도로 세계 30개 언론사가 참여해 구성된 탐사보도 컨소시엄은 작년 '팀 호르헤'란 이름의 이스라엘 기업에 접근했다.

고객을 가장해 수차례에 걸쳐 화상·대면 회의를 하면서 이들이 어떠한 사업을 벌이는지 들여다본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텔아비브 인근 모디인에 위치한 간판 없는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이 회사 사장 탈 하난(50)은 "(지난 20년 사이) 33건의 대선 규모 캠페인에 관여해 27건에서 성공을 거뒀다"면서 "현재도 아프리카의 선거 한 건에 관여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미국에서도 두 건의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만 미국 정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 특수부대 요원 출신으로 알려졌다.

함께 일하는 직원 상당수도 심리전과 소셜미디어, 선거, 금융 등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이스라엘 정부기관 출신자들이라고 한다.

하난은 미국,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흔적 없이 여론을 조작하려는 정보기관이나 선거 캠프, 민간 기업 등을 위해 비밀작전을 수행해 왔다면서, 에임스(Aims)로 불리는 툴로 소셜미디어용 가짜 계정을 생성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트위터와 링크드인, 페이스북, 텔레그램, 지메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수천 개의 가짜 계정을 순식간에 만들어내 여론 조작을 위한 군단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심지어 이런 계정에는 인터넷상에서 무단 수집한 것으로 확인된 인물 사진과 지난 수년간의 온라인 활동 기록까지 빠짐없이 갖춰져 있어 얼핏 봐선 진위를 가리기 힘든 수준이었다고 취재진은 전했다.

하난은 현재 운용 중인 가짜 계정만 3만 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가디언을 비롯한 국제 취재진은 이후 검증을 진행한 결과 미국과 영국, 캐나다, 독일, 스위스, 멕시코, 세네갈, 인도, 아랍에미리트 등 약 20개국에서 에임스로 생성한 가짜 계정이 여론 조작에 쓰인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팀 호르헤는 이에 더해 지메일이나 텔레그램 계정을 해킹하는 등의 수법으로 경쟁 상대의 정보를 빼내거나, 거짓 메시지를 보내 관계자 간에 불화를 일으키는 등 보다 '적극적인 서비스'도 제공해 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하난은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2022년 8월 케냐 대선에서 당선된 윌리엄 루토 현 케냐 대통령 진영의 한 전략가가 사용하는 텔레그램 계정을 해킹해 몰래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메시지를 보낸 뒤 지워버리면 당사자는 해킹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서 이를 통해 주요 인사들을 이간질하거나 정치적 논란을 일으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디언은 해킹 피해 당사자의 전화기를 직접 확인한 결과, 하난이 시연 중 실수로 써넣고 지우지 못한 '11'이란 메시지가 실제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하난은 이렇게 선거에 개입하는 대가로 받는 돈이 건당 600만∼1천500만 유로(약 82억∼206억원)에 이른다고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이들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 이용자 8천700만 명의 개인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해 정치광고 등에 썼다가 들통나 2018년 폐업한 영국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하청을 받고 외국 선거에 개입하기도 했다고 가디언은 덧붙였다.

이러한 보도와 관련해 하난은 "나는 어떠한 범법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이번 보도로 이스라엘 정부도 난감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은 외국에 수출한 스파이웨어가 반체제 인사와 정치인 등의 정보를 불법 수집하는 데 악용된 탓에 최근 수년간 상당한 역풍에 시달려 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