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연줄 있는 대기업·인허가 관리는 안 건드려"
"지진피해지는 범죄현장"…에르도안에 민심 급속 악화
[튀르키예 강진] 꼬리 자르기?…부실건축에 말단업자 줄구속
최근 튀르키예에서 강진 피해를 키운 건물 부실시공과 관련한 공분이 커지자 당국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말단 하도급 업자가 줄줄이 체포되는 가운데 대기업, 인허가 공직자들이 수사망에서 빠진 모양새라서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지진 피해자 유족들에게서 쏟아진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지난주 발생한 강진 관련 사망자가 튀르키예에서 3만1천600명을 넘어선 가운데 당국은 남부 지진 피해 지역의 부실시공 및 지진 발생 후 약탈 사태와 관련해 수십 명을 새로 체포했다.

앞서 튀르키예 정부는 지난 12일 부실시공과 관련된 건설업자 114명을 구금했다고 밝혔다고 UPI통신이 전했다.

당국은 13일만 해도 아디야만에 있는 복수의 건물 건축과 관련, 경제 중심 도시인 이스탄불에서 도급업자 2명을 체포했다.

진앙에서 북쪽으로 약 240㎞ 떨어진 말라티아 시에서도 검찰은 건물 하자와 관련해 31명을 체포했다.

그러나 지진 희생자 친척들은 정부의 부실시공 조사가 하급 범법자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정치적으로 연줄이 있는 건설업자와 건물 인허가를 내준 정부 관리들은 비켜서 있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 환경·도시화·기후변화부는 13일 지진 발생 후 검사를 한 주택 130만 채 가운데 10% 이상이 철거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손상됐다고 밝혔다.

무라트 쿠룸 환경부 장관은 지진으로 2만5천 채에 가까운 건물이 파손됐다고 확인했다.

지진으로 딸과 두 손자가 실종된 수나 오즈투르크(57)는 "이 집들을 지은 모든 도급업자, 건설업자, 인허가를 내준 관리 등 부실시공 책임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튀르키예 강진] 꼬리 자르기?…부실건축에 말단업자 줄구속
튀르키예 산업계를 대변하는 기업·비즈니스연맹은 13일 이번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를 840억 달러(약 107조원)로 추산했다.

앞서 1999년 튀르키예 북서부에서 발생한 강진 이후 내진 규제가 강화됐음에도 실제로 건설 현장에서 제대로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론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사망자 1만 7천명을 낸 1999년 강진 당시 정부의 부실 대응에 대한 분노에 편승해 2003년 총리가 된 후 집권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민심이 이반하고 있다.

오는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부는 부랴부랴 부실시공에 연루된 혐의로 건설업자들을 100명 넘게 무더기로 체포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작 건물 인허가와 관련된 관리들의 비리는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실제로 당국은 진앙 근처 가지안테프의 정부 부처 소속 건물에 대한 철거를 허가했으나 주민들은 부실시공과 관련된 문서를 파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부처는 지진으로 건물이 심하게 손상됐기 때문에 해체하는 것이라면서 그곳에 보관된 모든 문서는 보관고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파일을 담는 바인더와 그 안의 서류는 콘크리트와 철근 잔해물 사이에 사실상 폐기됐다.

튀르키예변호사협회는 13일 "지진발생 첫날부터 국민들의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는 지진 피해에 대한 증거를 은폐하고 범법자들을 은폐하고 처벌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협회 측은 증거를 수집해 부실시공 인허가 책임자들을 고발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면서 광범위한 지진 피해 지역은 "완전한 범죄현장"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 강진] 꼬리 자르기?…부실건축에 말단업자 줄구속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