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 시위에 학생·퇴역군인도 참여…네타냐후-김정은 나란히 배치한 피켓도
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입법 개시…10만명 반대시위 나서(종합)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가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입법 절차에 착수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13일(현지시간) 총파업을 결의하고 예루살렘에서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의회의 헌법·법률·사법위원회는 사법부 무력화 관련 법안 등을 표결 처리해 본회의로 이관했다.

이날 위원회를 통과한 첫 번째 법안은 이스라엘의 연성헌법인 '기본법'에 반하는 의회의 입법을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막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기본법에 반하는 입법을 무력화하려면 대법관 15명 전원이 동의해야 하며, 반대하는 대법관이 1명이라도 나올 경우 의회가 문제의 법안을 단순 과반 의결로 법제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위원회가 처리한 두 번째 법안은 정부의 장관 임명을 대법원이 반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른바 '데리 법'(Dery Law)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탈세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네타냐후의 측근인 아리예 데리 샤스당 대표의 장관직 복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다수의 힘으로 법안 처리를 밀어붙인 여당 의원들을 '파시스트', '반역자'로 부르거나 회의장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가 저항하다가 경비원들에 의해 회의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네타냐후 정부는 사법부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력해졌다면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의회 토론에서 "의도적으로 국가를 무정부 상태로 만드는 것을 중단하라"며 야당 의원들을 비판했다.

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입법 개시…10만명 반대시위 나서(종합)
이런 입법 절차에 대해 자유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에 따르면 이날 오후까지 의회(크네세트)와 법원, 총리실 등이 있는 예루살렘 중심부 거리에 약 10만 명이 모였다.

하이파와 텔아비브, 골란고원에서 버스와 기차,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예루살렘에 모였다.

현지 언론들은 이스라엘 북부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시위대의 차량 행렬이 4㎞가량 이어졌다고도 전했다.

시위대는 '민주주의', '자유', '사법 독립' 등을 촉구했다.

한 시위자는 '당신은 비비에게 투표했다.

당신은 무솔리니를 얻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비비는 네타냐후 총리의 별명이며 베니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파시즘 독재자다.

네타냐후 총리의 사진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군사독재를 풍자한 할리우드 영화 '독재자'의 주연을 맡은 사샤 배런 코헨과 나란히 배치한 피켓도 등장했다.

이번 총파업 시위는 보수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예루살렘에서 평일에 진행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도 학교나 일터를 떠나 시위에 참여했다.

이틀 동안 행진해 예루살렘에 도착한 퇴역 군인부터 의사, 테크부문 종사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입법 개시…10만명 반대시위 나서(종합)
한 12세 소녀는 '내가 18세가 됐을 때도 이스라엘에서 선거가 치러질 수 있을까'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텔아비브에서 반려자와 함께 10학년 아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찾은 출판업자 겸 번역가 길리 바 힐렐(48)은 의회의 사법 개혁 계획은 "정권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시위는 텔아비브 등 다른 도시에서도 잇따랐다.

일부는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가는 주요 도로를 차량으로 막기도 했다.

다만, 이번 시위가 이스라엘 여론의 일부분만 반영했다는 시각도 있다.

예루살렘에 본부를 둔 유대인 정책 연구소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시민의 약 44%는 사법 개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대는 41%에 그쳤다.

친정부 성향의 시민들도 최근 며칠간 사법 개혁 반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운집 규모는 훨씬 작았다.

이날 예루살렘 시위에서도 경찰 저지선 뒤에 한 극우 단체가 모여 '좌파는 배신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양질의 정부를 위한 운동'의 일리아드 샤라가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시위해도 그들은 입법 절차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독재의 위험"이라고 비판했다.

반(反)네타냐후 연정을 이끈 야당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신성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스라엘 국민은 계속 거리로 나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입법 개시…10만명 반대시위 나서(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