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이태원 참사 보며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고 생각"
추모공원·묘역, 상인회·주민 갈등으로 여전히 난항

"제일 잔인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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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③ "스무해 동안 미안하다고만 되뇌어"
20년이 지났지만, 혹시 지금도 딸에게 하고픈 말이 있냐고 묻자 황명애(65)씨는 떨리는 입술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정말로 딸에게 편지를 쓰려는데 일주일째 쓰려다 못 썼다.

그립지 않아서 못 쓰는 게 아니고, 보고 싶지 않아서 못 쓰는 게 아니고, 딸에게 미안해서 못 쓰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다 "저기다가 저렇게 묻어놓고 이름 한 자 새겨주지 못하는 엄마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며 "미안해서 글을 못 쓰는데, 제가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지금 할 말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께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에서는 50대 남성이 저지른 방화로 총 12량의 지하철 객차가 불에 타고 192명의 승객이 숨졌다.

이로부터 스무 해가 지났다.

14일 만나본 유가족들의 가슴에는 울분이 그리움이 응어리진 채 상처는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변한다.

잊어버리자고 생각하다가 울분이 터지고 또 울분이 터지고, 떠난 자식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프고…. 그런 것들이 매일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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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씨는 참사 이후의 시간을 이렇게 돌이켰다.

그는 "당시 19살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던 딸의 마지막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 또렷하다"면서 "사고 당일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옷을 갈아입던 모습이 마지막이다.

당시 딸의 휴대전화 요금이 충전이 안 돼서 전화도 한 번 못 하고 목소리도 한번 못 들어보고 그냥 보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③ "스무해 동안 미안하다고만 되뇌어"
황 씨는 국내에서 계속되는 여러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향해 쓴소리도 쏟아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팽목항을 찾아 희생자 유가족에게 '정말 미안하다 우리가 제대로 좀 했으면 여러분의 사고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자 세월호 유가족은 '여러분(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몰랐다.

미안하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에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이태원 참사 유족을 보고 미안하다고 하고 이태원 참사 유족이 세월호 참사 유족을 보고 미안하다고 한 기사를 봤다"면서 "우리가 왜 서로에게 미안해야 하냐"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제도와 그런 것들 때문에 번갈아 계속되는 참사는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미안해야 한다"면서 "이태원 참사를 보고 '저희 참사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하나도 나아진 게 없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③ "스무해 동안 미안하다고만 되뇌어"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은 황 씨는 자신의 오랜 바람을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추모탑을 안전 상징 조형물이라 부르고 추모 묘역이 되어 있지만, 묘역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추모 전시관 건립 등 여러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희는 늘 시장님을 짝사랑하나 봅니다"라며 "20주기를 맞아서 홍준표 시장님이 큰마음으로 문제들을 풀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황 씨는 추모공원·묘역 등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는 것과 관련해 "내 자식이 살다간 시간만큼 하자고 마음먹었는데, 그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서 "억울함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매일 매일이다"라고 했다.

유족과 대구시는 참사를 계기로 팔공산에 건립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와 주변을 추모기념관과 묘역으로 하려 했으나 주변 상인회의 거센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이 탓에 묘역에는 이름표나 아무런 표시 없이 꽃다발만 놓여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