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 새·수호자들
[신간] 나의 아름다운 날들·로렘 입숨의 책
▲ 나의 아름다운 날들 = 정지아 지음.
지난해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사랑받은 정지아 작가의 소설집(2013)이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개정판으로 나왔다.

11편의 이야기에는 노숙자, 치매 노인, 중증장애인 등 주변부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인생이 등장한다.

작가는 찌든 고통마저 따스한 유머로 감싸며 평범한 인생에서 비범함을 발견한다.

'봄날 오후, 과부 셋'은 친자매처럼 의지한 세 과부 할머니들의 봄날 수다다.

이들은 여든 살이 넘고 치매에 걸렸어도 질투하고 사랑하는 것은 소녀 적과 같다.

"너는 대체 무슨 맛으로 살았니?"
'숲의 대화'에선 빨치산이던 주인집 도련님을 가슴에 품고 산 아내를 평생 짝사랑한 남편 운학이 등장한다.

노인이 된 운학은 아내가 묻힌 잣나무숲에서 60년 전 죽은 도련님의 영혼과 대화를 나눈다.

'브라보, 럭키 라이프'에는 식물인간이 된 작은 아들의 재활을 위해 삶을 바친 부모와 큰아들의 갈등이 주축을 이룬다.

'천국의 열쇠'에선 중증장애인이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베트남 여인에게 구원이 된다.

정지아는 작가의 말에서 "사람을 살게 하는 쌀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며 "그런 소설을 위해, 농부의 정직한 땀방울,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은행나무. 356쪽.
[신간] 나의 아름다운 날들·로렘 입숨의 책
▲ 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지음.
200자 원고지 50장 내외로 쓴 엽편소설 13편을 모았다.

'로렘 입숨'(lorem ipsum)은 내용보다는 디자인 요소를 위해 사용되는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킨다.

단편 '동사를 가질 권리'는 책 제목을 암시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어째서 비는 내리기만 해야" 하는지 불만이다.

그는 "모든 주어는 그 어떤 동사라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각 편에 작가의 말을 붙인 구병모는 "말이 되지 않는 소설을 오래도록 간절히 쓰고 싶었다"며 소설에 이야기가 꼭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표한다.

또 다른 단편 '예술은 닫힌 문'에선 각종 오디션 예능의 비정함을 극대화했다.

소설 속 오디션에선 90초 만에 청중의 취향에 따른 판단을 받고 탈락하면 사자 우리에 떨어진다.

진짜 생과 사를 다투는 전장이다.

집행관은 탈락자에게 말한다.

"목숨을 걸겠다더니 그냥 해본 말이었나? (중략) 죽음도 불사하겠다더니, 이걸로 끝장을 보겠다더니… "
구병모는 사회문화 전반이 승자독식에 미쳐 돌아간다면서 "이런 사회에서 예술은 얼어 죽을…같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안온북스. 256쪽.
[신간] 나의 아름다운 날들·로렘 입숨의 책
▲ 입속의 새 =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지난해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초기 작품 20편을 엮었다.

오싹하고 기이한 이야기들은 공포와 판타지가 공존하는 그의 작품 세계 원형이다.

표제작에선 부부의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살던 사춘기 딸이 새를 산 채로 잡아먹는다.

부인을 죽여 여행 가방에 넣어둔 것이 하루아침에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둔갑('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가방')하고, 누군가의 머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찧는 장면을 그린 그림에 사람들이 열광('아스팔트에 머리 찧기')한다.

작가는 현실 공간의 비틀린 틈새에서 피어난 공포와 불안을 구덩이, 나비, 새 등 환상 속 메타포로 형상화했다.

노벨문학상(2003)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 J. M. 쿳시는 "또 다른 현실의 틈새로 미끄러지고 구멍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림형제와 프란츠 카프카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듯하다"고 평했다.

창비. 300쪽.
[신간] 나의 아름다운 날들·로렘 입숨의 책
▲ 수호자들 =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소설 10편이 영화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의 법정 스릴러이다.

실화에서 출발한 소설로 무고한 장기수의 결백을 증명하는 비영리 단체 수호재재단의 변호사 이야기다.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종신형을 선고받은 퀸시 밀러 앞에 사제복을 입은 수호재재단 변호사 컬런 포스트가 나타난다.

이 사건은 아내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30년 넘게 감옥에서 보낸 조 브라이언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작가는 포스트의 일인칭 시점으로 무고한 장기수들의 사연을 알리며 판결 오류, 편향된 사법 시스템과 같은 부당한 현실을 파헤친다.

하빌리스. 52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