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콩 한인 정착 75주년…"기회는 지금부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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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건 한인회장 "홍콩, 웨강아오 대만구와 발전할 것"
"1948년 홍콩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한인회를 설립하기 위해 발기대회를 열고 단체로 서명을 했죠. 그때 한인회가 꾸려진 덕에 그해 광복 후 대한민국 첫 올림픽 선수단이 런던올림픽으로 가는 길에 홍콩에 경유했을 때 선수들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선수단은 홍콩 한인회에 감사하며 동포들에게 환송 기념 서명문을 남겼습니다.
"
10일 홍콩의 한국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는 '집을 떠나 집으로: 홍콩에 보내는 감사의 편지' 전시장에서 만난 조성건 홍콩 한인회장은 나란히 걸려 있는 두 개의 서명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홍콩 한인의 역사를 돌아보는 해당 전시회에는 홍콩 교민의 '그때 그 시절'을 담은 사진 약 50점이 전시돼 있다.
"첫 올림픽 선수단이 배를 타고 홍콩으로 오면서 마라톤 선수들에게 내내 배 위에서 달리기 훈련을 시켰대요.
그중 최윤칠 선수는 당시 실력이 대단했는데 배 위에서 훈련을 너무 세게 하는 바람에 정작 런던올림픽에서는 기력이 다했다고 합니다.
최 선수는 런던에서 약 40㎞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근육 경련과 탈수증으로 막판 2㎞를 남기고는 걸어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당시 현장에 있던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덕에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졌을 때 유엔과 유럽 국가들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파병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고 합니다.
"
그때 그렇게 한국 올림픽 선수단을 환송했던 홍콩 한인회가 올해 75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1997년 홍콩의 주권 반환과 IMF,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파동, 2008년 금융위기, 2019년 반정부 시위,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과 코로나19 팬데믹 등 홍콩은 굵직한 사건으로 크게 뒤흔들렸다.
올해로 홍콩 이주 30년을 맞는 조 회장은 지난 세월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또 결국 다 극복해냈다고 돌아봤다.
"제가 1993년에 홍콩에 왔는데 그때부터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홍콩 사람들이 계속 떠났어요.
한인 사회는 주권 반환에는 별 동요가 없었는데, 1997년 말 IMF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죠. 1998년에만 2천 명의 교민이 홍콩을 떠났고 80개의 한국계 은행 중 30여 개만 남게 됐어요.
그래도 위기 중 기회가 있다고 당시 홍콩 소재 한인 무역 회사 200여 곳이 중국 특수를 타면서 연간 100억 달러의 수출 금액을 고국에 송금해 한국이 IMF 위기를 벗어나는 데 일조했습니다.
"
이후 다시 회복세를 보이던 홍콩은 2003년 3∼8월 세계에서 가장 혹독하게 사스 파동을 겪었다.
당시 세계 30개국에서 774명이 사스로 사망했는데 그중 홍콩에서만 299명이 사망했다.
조 회장은 "사스 때 진짜 심각했다.
그해 7월 홍콩 교민 수는 5천500명으로까지 쪼그라들었다"며 "이후 2008년 금융위기 때는 홍콩 진출 한국계 은행이 15개로 더 줄어들며 그때도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돌아봤다.
이후 10년간 홍콩은 부동산 활황과 함께 경제가 내내 호황이었다.
그 결과 2019년 초 홍콩 거주 한국 교민의 수는 1만8천명을 넘어섰다.
그 기간 홍콩은 한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고,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 금융맨들의 규모도 갈수록 커졌다.
그러나 2019년 6개월 넘게 이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뒤이은 코로나19로 지난 4년 홍콩 교민 사회는 다시 위축됐다.
지난해 1월 31일 기준 홍콩에 있는 한국 교민의 수는 6천873명이었다.
"여행사, 식당을 하는 교민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고 유학생들도 많이 떠났어요.
많은 한인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
다만 그는 한인회장으로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그 부분은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이제 방역이 풀리고 중국과의 국경도 완전히 재개방되면서 달라지고 있다"며 "팬데믹 기간 떠났던 한인들이 방역 완화와 함께 돌아오고 있다.
특히 홍콩에서 중국 진출을 노리며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 한인 학생들에게도 제가 강조하는데 홍콩은 이제 시작하는 웨강아오 대만구 개발의 중심지로서 비전이 있다"며 "국제 금융 허브로서의 홍콩의 역량과 높은 수준의 교육 여건에 더해 웨강아오 대만구 개발이 홍콩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는 홍콩·마카오와 중국 광둥성 주요 9개 도시를 묶은 경제권을 말한다.
"홍콩을 중심으로 한 웨강아오 대만구 발전 계획은 6년 전부터 나왔지만 팬데믹으로 그간 정체됐었죠. 이 계획의 시작은 지금부터이며, 이를 통해 홍콩 경제가 활기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
/연합뉴스
선수단은 홍콩 한인회에 감사하며 동포들에게 환송 기념 서명문을 남겼습니다.
"
10일 홍콩의 한국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는 '집을 떠나 집으로: 홍콩에 보내는 감사의 편지' 전시장에서 만난 조성건 홍콩 한인회장은 나란히 걸려 있는 두 개의 서명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홍콩 한인의 역사를 돌아보는 해당 전시회에는 홍콩 교민의 '그때 그 시절'을 담은 사진 약 50점이 전시돼 있다.
"첫 올림픽 선수단이 배를 타고 홍콩으로 오면서 마라톤 선수들에게 내내 배 위에서 달리기 훈련을 시켰대요.
그중 최윤칠 선수는 당시 실력이 대단했는데 배 위에서 훈련을 너무 세게 하는 바람에 정작 런던올림픽에서는 기력이 다했다고 합니다.
최 선수는 런던에서 약 40㎞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근육 경련과 탈수증으로 막판 2㎞를 남기고는 걸어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당시 현장에 있던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덕에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졌을 때 유엔과 유럽 국가들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파병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고 합니다.
"
그때 그렇게 한국 올림픽 선수단을 환송했던 홍콩 한인회가 올해 75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1997년 홍콩의 주권 반환과 IMF,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파동, 2008년 금융위기, 2019년 반정부 시위,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과 코로나19 팬데믹 등 홍콩은 굵직한 사건으로 크게 뒤흔들렸다.
올해로 홍콩 이주 30년을 맞는 조 회장은 지난 세월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또 결국 다 극복해냈다고 돌아봤다.
"제가 1993년에 홍콩에 왔는데 그때부터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홍콩 사람들이 계속 떠났어요.
한인 사회는 주권 반환에는 별 동요가 없었는데, 1997년 말 IMF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죠. 1998년에만 2천 명의 교민이 홍콩을 떠났고 80개의 한국계 은행 중 30여 개만 남게 됐어요.
그래도 위기 중 기회가 있다고 당시 홍콩 소재 한인 무역 회사 200여 곳이 중국 특수를 타면서 연간 100억 달러의 수출 금액을 고국에 송금해 한국이 IMF 위기를 벗어나는 데 일조했습니다.
"
이후 다시 회복세를 보이던 홍콩은 2003년 3∼8월 세계에서 가장 혹독하게 사스 파동을 겪었다.
당시 세계 30개국에서 774명이 사스로 사망했는데 그중 홍콩에서만 299명이 사망했다.
조 회장은 "사스 때 진짜 심각했다.
그해 7월 홍콩 교민 수는 5천500명으로까지 쪼그라들었다"며 "이후 2008년 금융위기 때는 홍콩 진출 한국계 은행이 15개로 더 줄어들며 그때도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돌아봤다.
이후 10년간 홍콩은 부동산 활황과 함께 경제가 내내 호황이었다.
그 결과 2019년 초 홍콩 거주 한국 교민의 수는 1만8천명을 넘어섰다.
그 기간 홍콩은 한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고,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 금융맨들의 규모도 갈수록 커졌다.
그러나 2019년 6개월 넘게 이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뒤이은 코로나19로 지난 4년 홍콩 교민 사회는 다시 위축됐다.
지난해 1월 31일 기준 홍콩에 있는 한국 교민의 수는 6천873명이었다.
"여행사, 식당을 하는 교민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고 유학생들도 많이 떠났어요.
많은 한인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
다만 그는 한인회장으로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그 부분은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이제 방역이 풀리고 중국과의 국경도 완전히 재개방되면서 달라지고 있다"며 "팬데믹 기간 떠났던 한인들이 방역 완화와 함께 돌아오고 있다.
특히 홍콩에서 중국 진출을 노리며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 한인 학생들에게도 제가 강조하는데 홍콩은 이제 시작하는 웨강아오 대만구 개발의 중심지로서 비전이 있다"며 "국제 금융 허브로서의 홍콩의 역량과 높은 수준의 교육 여건에 더해 웨강아오 대만구 개발이 홍콩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는 홍콩·마카오와 중국 광둥성 주요 9개 도시를 묶은 경제권을 말한다.
"홍콩을 중심으로 한 웨강아오 대만구 발전 계획은 6년 전부터 나왔지만 팬데믹으로 그간 정체됐었죠. 이 계획의 시작은 지금부터이며, 이를 통해 홍콩 경제가 활기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