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재선거 앞두고 12곳서 부재자투표…1년반새 표심 변화 감지

"이번에도 줄 서서 엄청나게 오래 기다릴까 봐 미리 투표했어요.

"
오는 12일(현지시간) 사상 처음으로 다시 치러지는 베를린 시의회와 구의회 선거를 앞두고 지난 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판코우 지역 부재자 투표소를 찾아 남편, 두 아이와 함께 미리 한 표를 행사한 제니퍼씨는 이같이 말하며 웃음 지었다.

[르포] 베를린 사상초유 지방선거 재실시 준비…"이번에는 잘 되길"
베를린에서 부재자 투표를 하려면 한 달여 년 전부터 부재자(우편) 투표를 신청해 투표통지서를 받은 뒤 부재자 투표소에 직접 가거나 우편으로 송달하는 형태로 투표를 할 수 있다.

그는 지난 2021년 9월 26일 독일 총선과 함께 치러졌던 베를린 지방선거 당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라거나 뒤바뀌는 등의 오류로 투표하러 나온 유권자들이 줄을 서서 3∼4시간씩 기다려야 했던 악몽을 회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시에는 투표소도 부족했고, 일부 투표소는 투표용지가 동나자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기도 해 전체 투표소 중 절반에서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 이후에도 투표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독일 헌법재판소는 베를린 지방선거를 완전히 다시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후보도 유권자도, 임기도 2021년 당시 그대로 유지한 채 되풀이하라는 결정이었다.

제니퍼는 "선거가 끝나고 나서 친구들과 지인들이 다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 힘들었다고 아주 난리였다"면서 "독일 내 다른 지역이 아니라 베를린이어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는 부디 잘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르포] 베를린 사상초유 지방선거 재실시 준비…"이번에는 잘 되길"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자유와 저항의 도시다.

독일에서는 중도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CDU) 소속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2021년까지 16년간 통치했지만, 베를린시에서는 22년째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이 집권중이다.

오류투성이인 지난 선거로부터 1년반 가량의 시간이 지나면서 표심에 변화도 적지 않은 변화도 감지된다.

주택난,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기후친화적 교통체계 전환, 과밀하고 노후화된 학교, 부족한 교사들, 계속해서 공사중인 지하철과 고속철 등 문제는 산적했지만, 눈에 띄는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베를리너차이퉁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포르자가 지난 1월 30일∼2월3일 베를린 유권자 1천5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야당인 기독민주당(CDU·기민당)의 지지율은 26.0%로 집권 사회민주당(SPD)의 17.0%를 크게 앞섰다.

앞서 지난 2021년 9월 26일 치러진 지방선거 당시 득표율과 비교하면 기민당은 지지율이 8%포인트(P) 상승한 반면, 사민당은 4.4%P 하락했다.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고, 투표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는 리키씨는 "기후친화적 교통체계 전환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이번 연립정부의 성과가 더뎌 너무 실망스러웠다"면서 "22년간 집권했으면 할 만큼 했고, 이번에는 갈아엎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르포] 베를린 사상초유 지방선거 재실시 준비…"이번에는 잘 되길"
하지만, 역시 판코우 부재자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토르스텐씨는 "베를린에서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지만, 원래 지지하던 사민당에 표를 던졌다"면서 "오류투성이여도 베를린은 베를린다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로 꾸려진 베를린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사상 초유로 재실시되는 이번 선거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사상 최대 예산인 4천만 유로(약 541억원)를 투입해 관리·유통체계를 정비·확장했다.

274만명에 달하는 유권자를 위해 투표소는 2천256곳으로 확충했고, 투표용지는 투표율이 100%가 되더라도 넉넉하게 준비했으며, 선거관리요원도 4만2천명으로 대거 늘렸다.

[르포] 베를린 사상초유 지방선거 재실시 준비…"이번에는 잘 되길"
선거관리요원에 지급하는 수고비용도 1년반전 60유로(8만1천원)에서 240유로(32만5천원)로 4배로 늘렸다.

시의회 선거 투표권자는 244만명, 구의회 선거 투표권자는 274만명이다.

구의회 선거에는 기존 투표권자 외에 16∼17세 독일 국적자와 베를린에 거주하는 16세 이상 유럽연합(EU) 회원국 국적 외국인도 동참할 수 있다.

슈테판 브뢰힐러 베를린시 신임 선거관리위원장은 "나는 이번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투표시간을 지난번보다 많은 평균 4분으로 책정했기 때문에 긴 줄이 늘어서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년 전과 똑같은 시의원·구의원 후보로 봄부터 여름까지 한차례, 가을부터 겨울까지 한차례,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지방선거전을 치르고 있는 각 정당은 막판까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다.

[르포] 베를린 사상초유 지방선거 재실시 준비…"이번에는 잘 되길"
판코우 부재자 투표소 인근 인문계 중·고등학교인 하인리히 슐리만 김나지움 강당에서는 집권 사민당과 녹색당, 좌파당과 기민당,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FDP), 극우성향의 독일을위한대안(AfD) 후보가 총출동한 가운데 학생들과 30명 이상인 과밀학급 규모를 줄이는 방법 등에 대한 질의응답을 했다.

집권 사민당 후보가 학교와 교사 확충, 예산 추가 투입 등을 통한 개선방안에 대해 설명하자, 야당인 기민당 후보는 이같은 목표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지만, 사민당이 22년째 집권하면서 왜 이지경에 이르렀느냐에 대해서는 반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