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2월 8일 오후 3시47분

전환사채(CB)는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기업이 현금으로 갚아야 한다. 반면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빚은 사라지고 자본은 늘어난다. 코스닥시장 기업들이 만기가 남아 있지만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조기 상환한 CB를 다른 투자자에게 재매각하려는 이유다.

이런 코스닥 기업의 약점을 파고드는 ‘CB 알박기’ 세력이 등장했다. 극소수 주식을 매입한 뒤 해당 기업의 CB 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을 걸어 CB 재매각이나 전환주식의 상장을 지연시키고 있다. 손발이 묶인 기업이나 CB 투자자가 피해가 커지면 결국 합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나선 소송이란 분석이다. 한국거래소가 가처분 소송만 들어오면 기계적으로 CB 주식 상장을 막는다는 점을 악용한 조치란 지적도 있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스닥 디스플레이 검사장비업체 소니드는 작년 말 CB 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에 걸려 자금 조달 업무가 마비됐다. 소니드 주식 10주씩 가진 주주 3명은 작년 말 CB 재매각, 주식 전환, 주식 상장 등을 제한해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상환한 300억원대 CB를 재매각하려던 회사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비슷한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조선기자재업체 메디콕스는 지난해 10월 똑같은 소송을 당했다. 올해 1월 코스닥 화장품 제조업체 아우딘퓨쳐스는 CB 발행 금지 등의 가처분 소송을 당했다. 소송 제기자가 일부 겹친다. 소송 대리인은 법무법인 김앤전(대표변호사 전병우)으로 모두 동일하다. 가처분 소송은 통상 20일 안팎이면 결론이 난다. 하지만 이들은 교묘하게 소송을 지연시킨다. 우선 기업 소재지와 상관 없이 사건이 가장 많이 쌓여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51부에 소장을 제출한다. 소송 금액이 5억원 이상이면 합의부(판사 3명) 사건인데도 단독부(판사 1명) 사건으로 신청한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상장기업은 물론 소액주주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피해가 커지면 상장사나 CB 투자자가 합의할 것으로 보고 알박기 소송에 나선 것이란 지적이다.

거래소는 이런 소송의 실체를 파악하고도 상장규정 46조의 ‘신주 발행 효력 등에 관한 소송이 제기된 경우 상장 유예할 수 있다’는 권한을 기계적으로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행세칙(41조)에선 신주 발행의 효력이 부인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예외적으로 상장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한 자본시장 변호사는 “거래소가 계속 방관하면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