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길거리를 걷고 있었지요. 늙은 거지 한 명이 내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눈물 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아아, 가난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하게 이 불행한 사람을 갉아먹는 것일까요!
그는 벌겋게 부어오른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했습니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져 보았습니다…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마저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외출을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어쩌나…’
그러나 거지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습니다.
“미안합니다, 형제, 내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 : 러시아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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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걸인의 아주 특별한 교감
투르게네프와 윤동주가 만난 거지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가 인생 후반기에 쓴 산문시입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은 150여 년 전인 1872년 2월, 찬바람 부는 길거리이지요. 무심코 걷다가 동냥을 청하는 ‘늙은 거지’를 만난 ‘나’는 무언가를 주고 싶어 호주머니를 다 뒤지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습니다.

그사이에 늙은 거지의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죠.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고는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거지의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어리지요.

농노 1000명 둔 ‘금수저’의 노예해방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 장면입니다. 거지가 싸늘한 내 손가락을 꼭 잡아준 것이지요. 그리고 혼잣말처럼 자기 손을 잡아준 것만으로도 큰 ‘적선’을 받았다며 고마워합니다. 그 순간 ‘나’가 거꾸로 깨닫습니다. 이 거지로부터 내가 더 많은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요.

이날 시인이 걸인에게 내민 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형의 선물입니다. 한겨울 거리에서 나눈 시인과 걸인의 특별한 교감, 그것을 통해 온 세상이 따뜻해지는 기적의 순간을 우리도 함께 경험하게 되지요.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금수저’였습니다. 대지주 집안이다 보니 농노가 1000여 명이나 됐죠. 어릴 때부터 사색적이었던 소년 투르게네프에게는 농노들의 삶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농장을 관리하면서 조금만 잘못해도 농노들을 때리고 시베리아로 보내버릴 정도로 마구 대했죠. 그들에게 휘두르던 채찍으로 아들까지 후려치곤 했습니다.

이런 어머니에게 반감을 가졌던 그는 모스크바대학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시야를 넓혔고, 1850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농노들을 모두 자유롭게 풀어줬습니다. 그러면서 자유주의 사상으로 러시아 사회를 개혁하려 했지요.

그의 문학에는 이 같은 사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밑바닥 걸인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랐던 이유도 이와 상통하지요.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 근대 문학기에 많이 읽혔습니다. 일본을 통해 번역된 것이긴 하지만, 그중 산문시 ‘거지’가 특히 많이 소개됐지요. 아마 식민지 조선의 시대적 상황이 독자들의 마음을 건드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의 특별한 독자 가운데 시인 윤동주가 있었습니다. 그가 연희전문 2학년 때인 1939년 9월에 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거지’를 패러디한 것이지요. 형식도 산문시이고 기본 배경과 설정도 비슷합니다. 다만 화자인 ‘나’가 걷는 곳은 ‘길거리’가 아니라 ‘고갯길’이고, ‘늙은 거지’는 ‘세 소년 거지’로 바뀌었지요.

식민지 청년의 비애와 부끄러움

윤동주 시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이렇습니다.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넝마주이 아이들의 행색이 ‘늙은 거지’만큼 비참해서 호주머니를 뒤져 보는데,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등 있을 건 다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들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아이들에게 내주지를 못하는군요. 왜 그럴까요? 동정심이 생기는 것과는 달리 자기 물건을 선뜻 적선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한편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아이들을 부르지만, 정작 아이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지요. 저마다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고개를 넘어가 버립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사라진 언덕 위에는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아무도 없지요.

이렇게 용기도 없고, 실행력도 없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도마저 실패했으니 얼마나 낯이 뜨겁고 무안하겠습니까. 그 모습이 곧 윤동주가 처한 식민지 조선의 슬픔이었죠. 나라 잃은 젊은이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19세기 러시아 문호가 쓴 ‘거지’와 20세기 조선 청년이 쓴 ‘투르게네프의 언덕’이 절묘하게 겹치는 장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요. 그 시공간의 경계에서 피어난 문향(文香)과 인향(人香)의 여운이 오늘따라 더욱 은은하게 전해져 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