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한 글자만 바꾸면 오디오…메타버스 세상의 돌비 되려고요"
“제 인생은 오디오예요.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디’로 바꾸면 오디오가 되거든요.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완전히 한우물만 팠어요.”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사진)는 지난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디오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눈을 반짝였다. 그는 오디오를 사랑해서 오디오 회사를 차렸다.

가우디오랩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음량을 평준화하고, 원하는 소리만 뽑아내는 기술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특정 악기의 소리만 뽑아내거나 음향에 입체감을 더하는 식이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서비스에서 몰입감을 더할 수 있다. 가우디오랩은 이 기술로 올해 초 ‘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대기업과 벤처캐피털(VC)의 ‘러브콜’도 잇따랐다. 삼성벤처투자, 네이버D2SF, 소프트뱅크벤처스, LB인베스트먼트 등이 가우디오랩에 169억원을 투자했다.

오 대표와 오디오의 인연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촌 형이 선물해준 믹스테이프를 들으면서 팝송에 푹 빠졌다. 음악은 좋아했지만 노래는 못했다. 악기 연주도 엉망이었다. 다행히 공부 머리는 있어서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했다. 오디오를 연구하는 분야로 진로를 잡았고, 전자공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고등학교 시절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의 캠퍼스 요즘이라는 코너를 좋아했다. 진행을 맡았던 연세대 방송국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마음을 뺏겼다. 그는 “꼭 연세대에 입학해서 그 선배를 만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회상했다.

오 대표는 결국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갔다. 대학 방송국에 들어가 음향기기를 만지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대학원에선 음향공학을 전공했다. 박사 과정을 마친 뒤엔 LG전자에 입사했다. 오 대표는 “당시 ‘클리어 보이스’ 기술을 개발했는데 아직까지도 TV에 쓰인다”며 “배경음 때문에 대사가 잘 들리지 않을 때 목소리를 명확하게 들려주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LG전자를 퇴사한 뒤 윌러스표준기술연구소라는 특허 관리 전문 회사를 차렸다. 그는 “2014년 메타(옛 페이스북)가 VR 회사 오큘러스를 2조원이나 주고 인수했는데 시장이 급성장할 징조로 봤다”며 “마침 VR에 꼭 필요한 음향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서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국제표준기술 회의가 열렸을 때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성당 앞에서 공동 창업자와 함께 다짐했다. 돌아가면 VR 오디오테크를 꼭 해보자고…. 사명이 가우디오랩인 이유다.

2015년 시드(초기) 투자를 유치하고 꽤 잘나갔다. VR이 ‘핫’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2017년이 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메타가 내놓은 VR 기기 판매량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폐업 위기까지 몰린 오 대표는 본질에 집중하기로 했다. 입체 음향 기술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열풍이 몰고 온 영상 콘텐츠에도 수요가 있다고 봤다. 여기에 음량 평준화 기술도 있었다. 영상을 볼 때 갑자기 소리가 크거나 작게 나오는 데서 오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기술이다.

판단은 적중했다. 가우디오랩의 기술은 네이버나우, 플로, 벅스 등에 쓰였다. 회사는 2019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가우디오랩은 ‘메타버스 세상의 돌비’가 되는 게 목표다. 오 대표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하루에 한 번씩은 가우디오랩의 음향 기술이 담긴 소리를 듣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