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해법 막판 줄다리기 와중에 사도광산·후쿠시마 오염수도 불거져
대일 여론에 영향 줄 수도…일부선 "법적 현안·과거사 분리해 다뤄야"
설 이후 한일관계 시험대…빨라지는 징용협의 속 추가 악재 변수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풀기 위한 한일 양국의 협상이 설 연휴 이후 중요한 시험대에 선다.

한국은 최종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필요하다며 일측에 사실상 공을 넘긴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이 사과나 피고기업의 판결금 변제 기금 참여 등에서 어느 정도 호응하느냐가 관건인데 지금까지 태도로 보면 결코 낙관하긴 힘들다.

강제징용 문제만도 벅찬 데 최근 한일관계엔 다른 악재들까지 더해졌다.

일본은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재신청하고,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출도 계획하고 있어 양국이 이런 이슈들을 관리하면서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이달말 국장급 협의 추진…日 호응조치 입장 구체화 주목
한일 당국은 설 이후 이달 말께 서울에서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간 국장급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국장급 협의를 한 지 보름 남짓만에 다시 마주 앉는 것이다.

통상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렸던 국장급 협의 주기가 빨라지는 것은 강제징용 해법을 둘러싼 양국의 막판 조율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직전 협의에서 한국은 12일 공개 토론회 등에서 드러난 부정적 국내 분위기를 일본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여론 환경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호응 조치를 압박한 것이다.

따라서 후나코시 국장이 방한한다면 일본 기업의 판결금 변제 기금 참여나 사죄 등 호응 조치와 관련해 좀 더 구체화한 입장을 가져올지가 주목된다.

일본은 줄곧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일본이 피고 기업의 기금 참여나, 징용 사실에 대한 인정을 담은 새로운 표현의 사죄 등을 꺼리는 것도 결국 강제징용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에 배치될 수 있는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서다.

설 이후 한일관계 시험대…빨라지는 징용협의 속 추가 악재 변수
그러나 이는 피고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국내 대법원 확정판결 취지를 살리길 원하는 피해자 측 입장과 여전히 격차가 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지난 22일 KBS '뉴스를 만나다'에 출연해 "만약 사과가 있다면 그 사과가 진정한 것인지에 대한 증거가 필요한 것이고 그 증거는 바로 피고 기업들의 기금 참여"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이외에 다양한 피해자들까지 구제할 수 있는 해결의 '틀'을 만드는 것이 숙제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확정판결 피해자들의 판결금을 대신 지급하는 역할을 맡는 동시에 포괄적 해법 마련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작업도 본격화할 방침이다.

재단은 설 이후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구지원팀을 발족하고, 다음 달 하순에는 다양한 입장에 처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자유롭게 요구 사항을 밝힐 수 있는 발언대 행사를 마련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분출된 목소리를 바탕으로 특별법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 사도광산 재신청 강행에 오염수도 곧 바다로…한일관계 흔드나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마련하는 가운데 터진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재신청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의 그릇된 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일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정식 추천서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사무국에 제출했다.

사도광산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이지만 일본 정부는 유산 등재 대상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해 조선인 강제노동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유산이 지닌 '전체 역사'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봄이나 여름으로 예정된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출 계획도 상반기 한일관계를 흔들 또 다른 뇌관이다.

설 이후 한일관계 시험대…빨라지는 징용협의 속 추가 악재 변수
최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방류와 관련한 관계 각료회의를 개최하고 방출 시기를 '올해 봄부터 여름쯤'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오염수 해양 방출에 대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국내외 검토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 결과를 기다리며 대비책 마련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오염수 방출 문제는 먹거리와 국민 건강 문제와 관련이 큰 만큼 여론 민감도가 매우 높다.

이를 고려해 정부는 국제사회 조사 결과만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도 면밀한 검증을 진행 중이다.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도쿄전력이 실시 계획을 제출하면서 오염수 내에 있는 핵종을 목록화했는데, 원안위도 적정한지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도광산 재신청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우리 국민의 대일 여론을 악화시킨다면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위한 양국 협상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큰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다른 사안과 분리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로 강제징용 배상도 타협하지 말자고 하면 한일관계는 앞으로 진전이 어렵다"면서 "역사학계의 강제 노역 사실 발굴, 국제사회 여론 환기 등은 계속 진행하되 현실적으로 일본과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