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월 일제강점기 '조선인 고문 악명' 종로서에 폭탄 투척
"예산 부족으로 생가·순국터 기념사업 진전 안돼"
출생연도 틀리고 순국터엔 쓰레기…씁쓸한 김상옥 의거 100주년
"이런 표석이 있었나요? 5년 넘게 출퇴근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8번 출구 앞 옛 종로경찰서 터에는 '김상옥 의거 터'라고 적힌 표석이 있다.

일제가 조선인을 고문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의사의 의거를 기리며 2016년 4월 서울시가 설치했다.

이곳에 자리한 지 7년 가까이 됐지만 높이가 1m가 채 되지 않을 만큼 작아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이달 17일 종각역 8번 출구 앞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38)씨는 5년간 종로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표석을 몰라봤다며 "지하 환기구 옆에 조그마하게 있어서 관련 시설물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상옥 의사의 종로서 의거는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는 1923년 1월 12일 종로서에 폭탄을 던진 뒤 열흘 동안 은신했다가 1월 22일 종로 효제동에서 일본 경찰 수백 명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결했다.

김상옥 의사의 외손주 김세원(76) 씨는 "의거 표지석은 눈에 잘 띄지 않아 사람들이 김상옥 의사가 폭탄을 던진 위치를 헷갈린다"고 지적했다.

의거 터 표석에 새겨진 김상옥 의사의 출생연도도 사실과 다르다.

애초 김 의사의 출생연도는 1890년으로 알려졌으나 10년 전 재조사 결과 1889년으로 밝혀졌다.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도 1889년으로 기록돼있다.

표석에는 새겨진 의사의 출생연도는 1890년이다.

표석 제작 당시 이미 출생연도가 1889년으로 확인됐던 점을 고려하면 오기를 이해하기 어렵다.

김씨는 "약 10년 전 역사학자와 평전을 만들면서 출생연도가 1890년이 아닌 1889년으로 확인됐다"며 "지자체에 공문을 넣어 수정을 요청했지만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출생연도가 잘못 기재돼있다는 점은 확인했으나, 효제동 순국터 표석 신규 설치 작업과 같이하려다 보니 진행이 늦어졌다"며 "올해 상반기 중으로 교체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출생연도 틀리고 순국터엔 쓰레기…씁쓸한 김상옥 의거 100주년
효제동.김상옥 의거 터' 버스정류장에 부착된 설명문' />

김상옥 의사가 나고 자라 생을 마감한 종로구 효제동에도 의사와 관련된 기념물이 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김상옥 의사의 이름을 따 '김상옥 의거 터'로 명명된 이화사거리 인근 버스정류장엔 A4용지 한 장 크기의 안내문만 전단지마냥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2019년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종로5가·효제동' 버스 정류장에 김상옥 의사의 이름을 함께 적으면서 이 안내문을 부착했다.

정류장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안내문이 있다는 걸 알려주자 대다수가 처음 본다는 반응이었다.

노선을 확인하던 박모(48)씨는 "타야 할 버스만 확인하고 안내문은 보지 못했다"며 "김상옥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아예 크게 따로 써 붙여 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스에서 내린 또 다른 시민도 "'종로5가·효제동'까지만 보고 내려서 의거 터였다는 건 방금 보고 알았다"고 했다.

정류장 인근에 있는 의사의 생가와 순국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좁은 골목 끝자락에 있는 생가, 순국터에는 말라 죽은 식물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김상옥 의사와 관련된 표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상옥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생가터 복원과 기념관 건립이 숙원사업인데 심사를 위해 주변 토지 등을 매입하고자 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진전이 안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출생연도 틀리고 순국터엔 쓰레기…씁쓸한 김상옥 의거 100주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