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에 대한 훈수
교보생명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신창재 회장에겐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의사 출신 금융회사 CEO가 그것이다. 국내 생명보험사 대표 중 유일하게 책임경영을 하는 오너이기도 하다.

신 회장은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부친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암으로 진단받고 쓰러지자 1996년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1999년부터 대표를 맡아 외환위기로 파산할 처지에 몰린 교보생명을 매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바꿔놨다. 그동안 수많은 금융회사가 사라졌지만, 교보생명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며 국내 대표 보험사로 자리 잡았다. 보험업의 특성인 장기적 관점에서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세밀한 리스크 관리와 보험업의 본질인 고객 보장을 선도하는 정도경영을 해온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재무적투자자와 분쟁 장기화

교보생명과 신 회장은 지난 몇 년간 골머리를 앓았다.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컨소시엄과의 풋옵션 분쟁이 장기화하고 있어서다.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총 1조2000억원)에 사들인 어피니티는 2018년 말 주당 41만원에 신 회장에게 되팔겠다고 했다. 주주 간 계약에 따른 것이지만 신 회장은 행사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고, 어피니티는 계약을 이행하라며 국제중재 소송을 제기했다. 중재 소송에선 ‘신 회장이 41만원에 되사줄 의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어피니티는 2차 중재를 걸었다.

신 회장의 재산은 교보생명 지분(34%)이 대부분이다. 상속세로 교보생명 지분(1800억원어치)을 현물로 납부했다. 풋옵션에 응할 자금이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피니티가 2조원에 되사가라고 하는 것은 경영권을 내놓으란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게 금융업계 시각이다.

교보생명은 어피니티가 풋옵션 가격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회계법인과 부적절한 공모를 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관계자들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실형을 구형했다. 판결은 다음달 1일 나온다.

최종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지만 중요한 것은 분쟁이 길어지면서 양측뿐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교보생명의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면서 2만여 명의 임직원과 설계사, 400만 명의 고객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기업가치 제고에 협력해야

양측의 분쟁은 풋옵션 가격의 접점을 찾지 못하면 해결하기 어렵다. 금융업계에선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로 교보생명의 증시 상장을 통해 공정시장가치를 도출하는 것을 꼽는다. 하지만 어피니티 측 반대로 상장도 여의치 않다고 한다. 지금의 증시 상황을 고려할 때 상장 후 주가는 41만원에 크게 못 미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어피니티의 풋옵션 가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분쟁이 지속되면 교보생명의 기업가치는 떨어지고 주요 투자자의 지분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증시 상장이 무산되자 교보생명은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역시 어피니티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어피니티가 이번에도 발목을 잡으면 그 의도를 의심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