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지휘자에겐 최고의 악기가 하나씩 있다. 바로 공연장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에겐 미국 보스턴심포니홀이 그랬다. 1900년 지어진 이 건물은 현대 음향학을 설계에 반영한 세계 첫 공연장이다. 당시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이던 클레먼트 서빈은 쿠션이 있는 객석 수로 음의 잔향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알아내 그 공식을 설계에 도입했다. 흡음재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을수록, 공간 용적이 작을수록 잔향 시간이 짧아진다는 점도 반영했다.이렇게 도출된 최적의 건물 규격은 높이 18.6m, 길이 38.1m, 너비 22.8m. 이 수치는 보스턴심포니홀에 ‘공연장의 스트라디바리우스’란 별명을 가져다줬다. 공연장은 그 자체로 훌륭한 악기였다. 번스타인은 자신의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를 1949년 초연하는 것으로 보스턴심포니홀에 애정을 나타냈다. 다른 지휘자들도 콘서트홀이란 악기를 품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겐 베를린 필하모니가, 구스타프 말러에겐 빈 무지크페라인이 악기였다.이제는 이들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없다. 하지만 레코드판(LP) 앨범에 담긴 이들의 작품을 원음과 가깝게 재현하는 음악 감상 공간이 우리에게 있다. 음악 애호가들이 긴 시간 수집하고 어루만진 오디오와 악기들이 그곳에 있다. ‘그때 그 소리’를 탐닉하기 위해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를 고수하는 공간. 역사가 100년에 가까운 빈티지 오디오와 직접 제작한 스피커 앞에 서면 옛 거장들이 세월의 파도를 헤쳐 다가오는 것 같다.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보인다고 하면 과장일까. 1930년대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에서 바이올린 현의 미세한 떨림과 호른을 때리는 호흡의 잔향, 피아노 건반에 닿는 손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방대한 법률은 단연 민법이다. 조문이 1118개에 달한다. 압도적인 분량과 난도 높은 판례 탓에 법조계에서는 민법을 쉽게 풀어 쓰겠다는 시도 자체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모순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장보은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지난달 말 대중 교양서적 <나를 지키는 민법>을 펴내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 26일 “법대 학부생 시절 민법은 천재들만 전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법조계에서도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민법 교양서적을 만들겠다는 시도가 의외로 없었다”고 말했다. ‘무모한 시도’라는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출간 한 달여 만에 1쇄 3000부가 다 팔렸고 3쇄째 찍고 있다.장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 학·석·박사, 사법고시 합격 후 12년간의 김앤장 변호사 생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석사 등을 거쳐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로 부임한 지 8년째다. 국내 민법학계 대가인 김재형 전 대법관과 윤진수 전 서울대 교수의 제자다.이 책은 2022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장보은의 오천만의 민법스쿨’을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여기에 최신 트렌드와 민법이 다뤄야 할 주제 등을 더했다. ‘상속 할 때 이것 안 하면 큰일난다’ ‘위자료 많이 받으려면 이렇게 하세요’ 식의 자극적인 사례로 흥미를 끌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개념을 먼저 쌓을 것을 권했다. “전세 사기를 피하려면 사례만 알아선 안 되고 기본적인 임대차와 계약의 효력 개념을 아는 게 먼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저당권, 시효, 부당이득, 담보 등의 어려운 용어를 하나씩 쉽게
밀라노는 제조업과 패션, 디자인을 선도하는 이탈리아의 문화·예술·경제 도시다. 매년 4월은 디자인과 관련한 전시와 쇼룸이 활짝 열린다. 그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행사는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 1961년 이탈리아 목재가구협회 후원으로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를 개최한 게 행사의 시작이었다. 오는 4월 8일부터 13일까지 열릴 살로네 델 모빌레를 찾는 ‘빛의 대가’ 2명을 서면으로 미리 만났다. 멘데 가오루 (75)는 건축 조명 디자인 그룹 LPA(Lighting Planners Associates)를 이끌고 있다. 로버트 윌슨(84)은 60년간 공연예술계에서 빛을 활용한 독보적 연출을 자랑해온 거장이다.건축 조명 디자인 거장 멘데 가오루조명은 과학·기술…인문학적 과정 거쳐야 창의적 설계 작품으로일본 출신의 도시 조명 대가 멘데 가오루는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 조명 트렌드를 짚어주는 한편 자신이 가진 조명 철학을 전파할 예정이다. 멘데는 조명을 쓸 때 도시 경관을 하나의 상품으로 접근한다. 건축, 도시, 조경, 전기설비, 물리학과 생리학 등의 이공학적 지식뿐 아니라 심리학, 미학 등 인문학적 융합이 불가결하단 게 평소 그의 생각. 멘데는 “조명은 과학이고 기술이며, 인문학적 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에는 예술로 표현되는 창의적인 설계 작품”이라고 했다. 그가 일본 도쿄역 마루노우치 빌딩, 센다이 미디어테크,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등의 조명을 설계했다.건축 조명의 마술사로 불리는 멘데지만, 그는 태양이 모든 빛을 압도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태양의 빛에서 모든 걸 배워야 합니다. 조명의 기원은 태양과 불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