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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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석 이마트 대표를 둘러싼 경영 환경은 극한의 복잡계(界)다. 요즘 말로 ‘멀티 유니버스’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컨슈머 산업만 해도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무엇이 유통의 대세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류와 IT를 무기로 소비자 지상주의를 부르짖는 아마존이 대세일까, 아니면 ‘셀러(seller) 천국’을 내세우는 알리바바가 살아남을까, 혹은 가성비 PB(자체 브랜드)로 유럽 시장을 휩쓸고 있는 하드 디스카운트 스토어(HDS)의 알디가 대안일까…당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강 대표의 최대 미션은 그래서 어렵다. 그는 신세계그룹에 ‘유통의 신세계’를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로 유비를 설득한 제갈량에 비유할 수 있겠다. 역사의 모든 개혁가가 그랬듯, 강 대표는 미래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조직을 설득해야 한다. 아무리 그럴싸한 청사진을 그린다고 한들, 위로는 오너가(家)를, 아래로는 임직원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그 개혁은 실패한다. ‘정용진의 장자방’이라고 불리는 강 대표는 올해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가.

‘이마트 사람보다 이마트를 더 잘 아는’ 관료 출신 기업인

2019년 10월 강 대표가 취임한 이후 작년까지 이마트는 전열을 정비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3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G마켓을 인수한 건 되돌리기 어려운 승부수다. SSG닷컴은 ‘셀러 판매’를 중단, 럭셔리와 신선식품(그로서리)에 집중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약 3년간의 숙고를 거친 끝에 이뤄진 온라인 전위 부대와 관련한 ‘역할 정리’다.

정 부회장과 강 대표는 신세계그룹의 주요 유통 계열사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횡적인 정리 작업에도 매진 중이다. 이 과정은 총 3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SSG닷컴과 G마켓의 회원 혜택을 통합한 것이 첫 번째다. 두 회사의 결합에도 아직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내부 과제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사용자 입장에선 통합 멤버십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신세계그룹은 백화점, 면세점, 스타벅스코리아 등 핵심 계열사를 모두 포함하는 극강의 멤버십 서비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강 대표는 이 과정의 어려움을 회사 임직원에게 이렇게 표현한다고 한다. “국가 간 연합만큼이나 힘들다”. 예컨대 유럽연합만 해도 영국은 그리스 같은 나라에 자국민의 세금이 왜 쓰여야 하냐며 반발, 결국 EU를 탈퇴했다. 통합 멤버십을 만들 때 그룹 계열사 간 심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마트가 온라인 전위 부대의 역할을 정리하고, 그룹 전체 서비스 통합 작업을 실제로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신세계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쿠팡과는 확실히 다른 길을 간다’. 일견 쉬워 보이지만, 이 과정은 강 대표가 그의 위, 아래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쿠팡이 몽골 기마병이라면, 이마트는 제갈량의 팔괘진

강 대표가 펼쳐가고 있는 미래는 아마존보다는 확실히 알리바바에 가깝다. ‘더 좋은 물건을 싸고 빠르게’라는 유통의 원칙은 똑같지만 알리바바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롱테일의 법칙을 최대한 활용한다. 수억명의 셀러들이 완전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무대를 제공한다는 것이 철칙이다. 물류는 직접 창고를 짓기보단 ‘차이냐오’라는 물류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 플랫폼엔 중국 4대 물류 기업을 포함해 약 4000여 개의 물류 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셀러 천국’인 타오바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럭셔리 상품에 특화된 티몰도 운영하고 있다. 명품을 비롯해 브랜드 파워로 승부하는 글로벌, 전국구 상품들을 티몰에서 판매한다. 알리바바가 최근 티몰과 타오바오를 다시 통합하긴 했지만,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는 글로벌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티몰은 타오바오에 오염되지 않는 쇼핑몰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수년 간 공을 들였다.

강 대표는 이마트에 입사하기 전, 상하이에서 약 3년을 살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니 미국 유통에 대해서도 빠삭하다. 농림수산식품부 서기관으로 있을 땐 파리를 비롯해 유럽 각지를 다녔다. 그만큼 글로벌 유통 시장의 다이내믹스(동학)를 잘 아는 기업인은 드물다. 그의 책상 위엔 늘 주요 영자 신문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놓여 있다.

강 대표가 알리바바를 닮은 ‘신세계 웨이’를 천명한 건 신세계의 강점을 확실히 파악했다는 걸 의미한다. 신세계는 온오프라인 유통을 모두 갖고 있는 기업이다. 쿠팡처럼 단일 플랫폼 하나만으로 승부해야하는 스타트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쿠팡은 자신의 약점을 칭기즈칸의 기마병 전략으로 돌파했다. 곳곳에 병참 기지를 세우고, 기마병의 빠른 속도를 활용해 단숨에 적들을 제압하는 전략이다.

신세계도 강 대표 취임 전까진 쿠팡의 전략을 따라가는 듯했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라는 글로벌 사모펀드로부터 투자받은 SSG닷컴은 수도권에 최첨단 자동화 물류센터인 ‘네오’를 3개 건설했다. 하지만 ‘빌드 업’ 속도가 너무 느렸다. SSG닷컴이 셀러 판매를 중단한 건 쿠팡 식의 대규모 물류 인프라 건설은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음을 뜻한다.

신세계는 굳이 ‘쿠팡 웨이’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 강 대표는 속도전보다는 진지전을 택한 듯하다. 병법으로 보면 제갈량의 팔괘진에 가깝다. 진법을 펼치려면 보병과 기병이 톱니바퀴 들어맞듯이 합을 맞춰야 하고, 그만큼의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작년까지 강 대표의 3년은 진법을 구상하고, 진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임직원들을 디지털로 무장시키는 과정이었다.

쿠팡이 쇼핑, OTT, 배송 등 계속해서 서비스를 확장해가며 슈퍼앱을 지향하는 건 그 외 달리 수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쿠팡이 종(縱)으로 승부한다면, 신세계는 횡(橫)으로 승부하면 된다는 게 강 대표의 판단이다. 온라인에선 G마켓이란 큰 바구니로 SSG닷컴을 감싸듯이 전선을 펼치고, 백화점 복합쇼핑몰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거점들도 온라인과 통합된 쇼핑 채널로 기능하게 만들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이마트에 우호적인 외부변수규제 완화와 제판 전쟁

이마트에 불리하게만 돌아갔던 외부 환경도 올해는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 완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일요일 의무 휴업에 대해 대구시가 얼마 전 평일 휴무로 바꾼데 이어 부산, 충청권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평일 휴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규제 완화의 물결이 서울로도 확산한다면 이마트를 비롯해 대형마트 매출은 10~20%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이션이 촉발한 제조사와 유통 간의 갈등 역시 이마트로선 호재라고 할 수 있다. 1등 브랜드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CJ제일제당은 쿠팡의 성장세를 꺾기 위해 제품 납품 중단이란 초유의 카드를 꺼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CJ제일제당 등 주요 식품 제조사들은 자체 유통망인 대리점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쿠팡 공급가가 더 낮아지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한다”며 “결국 타협점을 찾긴 하겠지만 제조사들은 G마켓 같은 셀러 중심의 플랫폼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강 대표가 취임하던 2019년 10월 이마트 주가는 8만9000원대였다. *일 *원으로 마감됐으니 주가 측면에선 나름 선방한 셈이다. 전열을 정비한 시간에 대해 시장은 딱 그만큼의 평가를 내렸다. 전략을 세웠고, 내부 통합을 이룬 현시점에서 강 대표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일은 신세계 유니버스의 중심을 강화하는 일이다. 소비자에게 다양한 채널의 ‘신세계 유니버스’를 끊김이 없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물류, IT 등 백본(back bone)을 튼튼히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쩌면 ‘강희석 체제’의 진짜 시험은 올해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