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자동차 배터리 공급난이 본격화할 것이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다수 배터리업체의 수율(생산품 중 양품 비중)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 있는 데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내년부터 발효되기 때문이다. 수년간 완성차업계를 괴롭히던 칩쇼티지(반도체 공급난)가 완화되자 이번엔 셀쇼티지 때문에 생산에 애를 먹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투자자설명회에서 북미의 전기차 40만 대 생산 시점을 애초 계획한 내년 말에서 2024년 상반기로 6개월 늦춘다고 밝혔다. 메리 배라 GM 회장은 “배터리 조립과 직원 고용, 훈련 등에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배터리회사의 수율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한국 배터리회사들의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들조차도 수율을 올리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글로벌 전기차 확산 속도를 배터리 생산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내년부터 IRA의 배터리 핵심 부품 원산지 조항이 발효되는 것도 배터리 등의 공급을 위축시킬 전망이다. 양극재 음극재 등 주요 부품의 북미 제조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미국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한다.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핵심 광물을 조달한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규정도 내년 발동된다. CATL 등 중국 배터리의 시장 공급이 위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리 인상에 따른 투자 위축은 배터리셀 공급난을 장기화시킬 전망이다. 최근 수년간 유럽 국가들은 아시아에 배터리 생산이 편중됐다며 자체 기업 육성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금리 인상에 따라 실패로 결론이 나는 분위기다. 영국 브리티시볼트는 자금 조달에 실패하며 6조원 규모 공장 건설 계획을 축소한다고 밝혔다. 최근 단기 자금을 급하게 확보하며 파산을 면한 이 업체는 임직원 임금을 삭감하며 버티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완성차업체들은 급격히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맞추기 위해 미리 생산능력을 확보한 한국 배터리업체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하고 있는 GM은 ‘세컨드 벤더’를 찾고 있고, 현대차는 SK온과 미국에 합작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최근 직원들과의 타운홀미팅에서 “많은 고객사가 협력을 요청하고 있고, 내년 1분기까지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며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고객사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