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회사 안에서 창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교보생명이 도입한 사내벤처 제도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사원과 대리급 태스크포스(TF)장이 나온 데 이어 사업화 및 독립 분사를 추진하는 곳도 생겼다. 교보생명은 최근 사내벤처 데모데이와 심의협의회를 열어 ‘송소담’과 ‘딸기’를 분사시켜 사업화에 본격 나서기로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송소담은 맞춤형 ‘펫 푸드’를 만들어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소비자가 반려동물의 건강 상태와 기호에 따라 고기나 채소 등 재료부터 용량까지 직접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송소담은 반려동물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문진 꾸러미를 제공하고 있으며 향후 자동추천 기능도 적용할 예정이다.딸기는 고객이나 주민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전국의 유명 디저트 가게의 제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해 방문 대기, 수요 예측 등의 어려움을 해결한 게 특징이다.교보생명은 송소담의 신소연 선임(사원·31)과 딸기의 진수민 대리(35)를 각각 TF장으로 임명했다. 사원·대리급이 TF 리더에 오른 첫 사례다. 신 선임은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앞으로 최고의 스타트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족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굿칠’과 캠핑 관련 SNS ‘어웨이크’, 글쓰기 지도 및 출판 플랫폼 ‘플래터’, 여행 콘텐츠를 다루는 쇼트폼 ‘오소리’ 등도 디지털전략담당 산하로 배치돼 사업화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교보생명은 올해 초 사내벤처 제도를 본격 시행했다. 1기에는 모두 97개 팀이 지원했고, 9개 팀은 사업 역량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에 합격하기도 했다.새로운 시도를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라는 신창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실패가 아니라 혁신의 과정으로 여겨 새로운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조직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인천 송도 국제업무단지(IBD) 개발을 두고 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게일인터내셔널과 벌인 25억달러(약 3조5500억원) 규모 분쟁에서 승소하면서 한국의 국제중재 경쟁력이 재조명받는 분위기다. 최근 대형 국제중재에서 연이어 승소 소식이 들려오면서 ‘경제적 위상에 비해 약하다’는 인식이 주를 이뤘던 국제중재 역량이 조금씩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수조원대 분쟁서도 승리국제상업회의소(ICC)는 지난달 28일 “포스코건설이 합작 계약을 위반했다”며 게일인터내셔널이 2019년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중재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 분쟁은 론스타가 2012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46억7950만달러) 이후 10년간 정부와 국내 기업이 휘말린 중재 중 가장 큰 규모로 관심을 모았다. ▶본지 2022년 11월1일자 A1,12면 참조 포스코건설은 중재과정에서 20년 전 게일인터내셔널과 합작관계를 맺은 뒤 지금까지 벌어진 사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경제자유구역 사업시행자의 지위·권한·의무 △프로젝트 파이낸싱 △합작 계약 △질권 계약 △부동산개발사업 △한국과 미국 조세제도 △부동산 가치평가 등에 관한 법률에 위반되는지를 확인해왔다.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참고한 자료만 10만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내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인과 부동산 개발사업을 할 때 생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법률문제를 살펴봄으로써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포스코건설에 앞서 지난 8월 말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두고 미국 론스타와 벌였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에서 기대 이상의 판정결과를 이끌어냈다.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에 부과한 손해배상액은 2억1650만달러(약 2800억원)로 론스타가 당초 제기한 금액인 46억7950만달러(약 6조6500억원)보다 대폭 축소됐다. 지난해에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니티 등과 벌인 2조5000억원 규모 국제중재에서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어피티니 등 재무적 투자자들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을 사들일 때 신 회장 측과 정한 주당 40만9000원으로 풋옵션(일정 가격에 지분을 되팔 권리)을 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지만 ICC 중재판정부는 “어피니티 측이 풋옵션을 가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 회장 측이 풋옵션 가격을 40만9000원으로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고 판정했다. 같은 해 인천시도 인천 영종국제도시 용유·무의도 인공 관광레저 도시(에잇시티) 개발사업 무산에 대한 책임을 두고 독일 캠핀스키와 벌인 국제중재에서 승소했다. 화장품기업, 식자재기업 등 다른 국내 기업도 외국 회사와의 중재에서 연이어 이겼다. 법조계 관계자는 “굵직한 국제분쟁에서 한국의 중재역량이 올라왔음을 보여주는 판정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위상 달라졌으나…넘을 산 많아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민간영역에서 국제중재 분야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이어진 것이 조금씩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 법무법인 광장·태평양·세종·피터앤킴 등이 국제중재 전문지인 영국 글로벌 아비트레이션 리뷰(GAR)가 매년 발표하는 국제중재 분야 세계 100대 로펌에 들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과거엔 글로벌 시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한국인 중재인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30명의 한국 변호사가 ICC와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국제중재 사건에서 중재인을 맡는 등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6월엔 박은영 김앤장 변호사가 국제중재법원 독립 중재인(전담 판사 역할)으로 새 출발하며 주목받기도 했다.다만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려면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은 아직 아시아 중재시장에서도 홍콩과 싱가포르 등을 추격하는 입장이다. 국제중재실무회가 한국의 중재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KCAB)으로부터 의뢰받고 지난 2월 국제중재를 많이 활용하는 국내 27개 기업의 해외 법무 담당 팀장급 사내변호사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 ICC, SIAC(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 LCIA(런던국제중재법원) 순으로 국제중재기관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호하는 중재지로는 런던과 싱가포르가 주로 지목됐다.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이 44년 만에 새단장(rebuilding)에 들어간다. 내년에 사업에 착수해 개관 50주년을 맞는 2028년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광화문 광장과 연계로 세종문화회관을 ‘미래 감성문화 도시 구현’의 거점으로 조성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전략이다.오세훈 서울시장은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시설 ‘필하모니 드 파리’를 방문해 “세종문화회관을 서울을 대표하는 차세대 감성문화 플랫폼으로 새단장하겠다”고 밝혔다. 세종문화회관은 국내 공연예술계를 대표하는 역사적 상징물이지만 1978년 첫 개관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 및 공연시설 노후화가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세종문화회관 새단장은 오 시장이 추진하는 ‘글로벌 톱5 문화도시’ 구현의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는 지난 5월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에 들어갔고, 여론수렴 과정 등을 거쳐 상세 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우선 세종문화회관의 기존 대극장은 외관 디자인은 유지하되 내부 공간을 전면 리모델링해 뮤지컬, 오페라 등 다채로운 공연이 가능한 첨단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공연장 규모도 기존 3022석에서 객석 수를 줄이고, 객석과 무대 간 거리도 좁힌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극장 객석 수가 지나치게 커서 인기 공연도 300~400석이 채워지지 않을 정도”라며 “본무대와 3층 객석까지의 대각선 거리가 55m로 공연관람의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불만이 많았다”고 설명했다.대극장 이외 공간은 전면 개축해 서울시립교향악단 전용 ‘클래식 콘서트홀’을 새롭게 조성한다. 서울 강북권에 들어서는 최초의 클래식 공연장이다. 라이브 음향에 최적화되고 풀 편성 오케스트라 공연이 가능한 적정 규모로 만들 계획이다. 콘서트홀 외부에는 대형 외벽영상(미디어파사드) 시스템을 구축해 광화문광장에서 공연 실황을 누구나 무료로 실시간 관람할 수 있도록 한다.대극장과 콘서트홀 사이에는 광화문광장과 바로 연결되는 대규모 열린공간(오픈큐브)을 마련해 스탠딩 공연,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오 시장은 “클래식 콘서트홀은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게 음향”이라며 “음악 애호가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음향을 구현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술의 전당, 롯데콘서트홀 등 서울의 클래식홀이 강남에 집중돼 강북과의 불균형 문제가 있었다”며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서울시민들이 먼 강남까지 이동하지 않고도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이날 오 시장이 찾은 필하모니 드 파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시설로 2015년 1월 개관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를 맡아 주목받았다. 최대 2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앙 공연장을 비롯해 콘서트홀(1600석), 원형극장(250석), 교육시설, 악기박물관 등 복합 문화시설로 구성돼 있다. 공연 장르에 따라 공간을 효율적으로 변경할 수 있어 정통 클래식 공연뿐만 아니라 재즈, 현대음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한다.파리=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