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밀집 천호동 로데오거리서 수능맞이 거리상담
"가정밖 청소년 대다수, 학대나 방임으로 거리 나와"
"혹시 고민거리나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니?" "저쪽에 상담 부스가 있으니까 진로상담이 필요하면 찾아오면 된단다.

"
청소년 상담사들이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청소년을 만나면 건네는 말이다.

흡연·음주 등 소위 '일탈 행위' 이면에 다른 원인이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을 섣불리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거리 상담사들의 설명이다.

연합뉴스는 수능시험 다음날이었던 지난 18일 저녁 서울 강동구 천호동 로데오거리 일대에서 진행된 '찾아가는 거리상담'(아웃리치)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이날 여성가족부, 지자체, 청소년쉼터,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강동경찰서, 상담원 등 종사자 40여명은 기관 합동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상담받을 수 있는 창구를 안내했고, 위기도가 높은 청소년에게는 전문 상담 및 쉼터 입소 등 보호조치를 제공했다.

특히 이날은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참여해 직접 위기청소년 상담을 하고 천호동 지역 순찰을 하며 시설 종사자들로부터 이 일대 청소년 밀집 구역의 특징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관계자들에 따르면 천호동 로데오거리 일대는 평소 좁은 골목마다 구석에서 흡연하는 청소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가정밖 청소년 '핫스팟'이다.

김범구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소장은 이런 위기청소년들을 만나면 '흡연하지 말라'고 바로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사를 하고, 홍보물을 나눠주며 거리상담이 있다는 것을 안내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청소년들의 흡연 등 행위 이면에는 아이들의 깊은 고민이 있기 마련이므로, 곧바로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청소년들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청소년시설 종사자, 경찰은 청소년들이 자주 방문하는 놀이기구 디스코팡팡 시설, 즉석사진부스 등을 찾아 거리상담 및 112신고 홍보물을 부지런히 배부했다.

김현숙 장관도 거리에서 만난 청소년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고민이 있거나 진로 상담을 받고 싶으면 골목 앞으로 오면 된다"고 안내했다.

이어 김 장관은 김범구 소장이 이끄는 45인승 버스형 이동형 쉼터에서 전문 상담사 입회하에 고위기 청소년인 A(19)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A군은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3년 전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가 아웃리치 현장에서 그를 찾아냈고, A군은 이후 이동형 쉼터를 꾸준히 찾아 상담을 받으면서 고3이 된 현재 대학교 수시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김 소장은 "3년간 저희가 A군을 키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라포(rapport.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뤄진 인간관계)가 쌓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서 즉석으로 찾아내는 위기청소년들도 있지만, A군처럼 라포가 잘 형성돼 종사자들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따라오는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종사자들은 지난해 '가출청소년' 용어가 '가정밖청소년'으로 바뀐 것을 언급하며 청소년들이 스스로 가정을 벗어나는 경우보다 가정 밖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입을 모았다.

최은영 강동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은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 가출했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가정 해체와 부모의 무관심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구 소장도 "가정 밖 청소년 대다수가 가정 학대, 방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정을 이탈해 길거리로 나온 것인데, 아직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