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돌아온 윤이상 오페라 '심청'…감격의 축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격렬한 사운드·간절한 아리아·주역들 테크닉 조화
올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화제를 낳았고 관심을 끌었다.
관객의 찬사를 받은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프로덕션에 이어 1999년 예술의전당에서의 한국 초연 이후 23년간 공연 기회를 얻지 못했던 윤이상의 '심청'을 폐막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심청'을 본 관객들은 무엇보다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윤이상의 음악에 열광했다.
이 공연은 국내 현대 오페라 무대로는 매우 드문 수준인 유료관객점유율 71%를 기록했다.
오페라 '심청'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문화축전 일환으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예술감독 귄터 레너트가 윤이상에게 작곡을 맡긴 작품이다.
동서양 음악이 조화를 이루고 현대 서양음악에 새로운 출구를 제시해 '모든 문화의 화합'이라는 뮌헨 올림픽 슬로건에 부합했다.
한국 초연 때 지휘를 맡아 윤이상의 '심청' 음악에 정통한 지휘자 최승한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오케스트라인 디오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오케스트라는 서막 초반부터 서양악기로 국악기 음향을 만들어내는 윤이상 음악의 특성을 탁월하게 구현했다.
하프와 첼레스타(건반악기의 일종)가 심청의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점도 돋보였다.
음 하나하나의 지속과 떨림, 파도와 폭풍우를 묘사하는 격렬한 사운드, 주역 아리아에 담긴 가슴을 흔드는 간절한 진심, 합창단(대구오페라콰이어와 벨레 커뮤니티 코러스)이 전하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삶의 윤리, 그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었다.
일반적인 오페라 공연 준비 기간의 세 배 이상이 필요했던 '심청'의 긴 연습 기간에 출연진과 스태프가 쏟은 노력이 드러난 결과로 보였다.
원작대로 독일어로 노래한 이번 공연에서 대사가 노래로, 또 노래가 대사로 이어지며 바뀌는 '심청'의 음악적 구조에 익숙해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심청 역의 소프라노 김정아는 어떤 오페라 배역보다 어려운 역할을 경이로운 발성 테크닉과 음악적 해석으로 소화해냈다.
인당수에 뛰어들기 전 가장 극적인 아리아의 최고음에서도 김정아의 아름다운 음색은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심봉사 역의 바리톤 제상철은 눈 뜨고 싶은 욕망과 딸에 대한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을 적절하게 변화하는 음색과 연기로 표현해 큰 호응을 끌어냈다.
설화나 판소리 '심청'에서보다 훨씬 강도 높은 악역이 된 뺑덕 역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은 죄책감 없이 거짓을 일삼는 캐릭터의 특징을 유연한 가창과 유머 감각으로 보여줬다.
심청 어머니 옥진 역의 소프라노 강수연은 파워 넘치는 가창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왕 역의 바리톤 오승용을 비롯해 아낙네 세 명 등 여러 조역 역시 배역에 어울리는 연기로 극에 활력을 더했다.
이번 프로덕션 연출가 정갑균은 상자 형태로 분할한 단순한 무대 디자인을 통해 대본과 음악의 감동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연출 노트에서 "자기희생, 죽음, 부활, 대관(戴冠)으로 이어지는 강렬한 스토리와 천상·지상·물속 세계로 나뉘는 다양한 세상을 매우 단순하게, 또 한 편의 수묵화처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흰 의상과 검은 무대, 영상 효과로 인해 때로 흑백영화 같은 인상을 준 무대는 1막과 2막 사이 막간극에서 물속 세계를 표현할 때 오묘한 색채감으로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용왕 역 5명과 용왕의 신부 5명이 함께 노래하는 물속 장면의 독특한 의상과 조명, 영상 효과 덕분에 관객은 마치 홀로그램을 보는 듯한 독특한 환상 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영상 속 거대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쏟아지는 폭포는 이 오페라의 토대가 된 도가의 '무위자연'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무대에서 영상은 특히 큰 역할을 해냈다.
2막에서 심봉사는 딸 심청의 혼인 잔치에서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지식에 눈이 멀어 딸과 이웃을 챙기지 않은 채 이기적으로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토로한다.
심봉사의 개안이 '기적이 아닌 자기반성에 따른 결과'라는 쿤츠의 대본은 실제로 도교 일각에서 형성된 '공적인 고백과 참회로 병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주장과 관행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행위를 통해 심봉사 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병자들이 다 낫게 된다는 설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오페라 '심청'은 그동안 여러 이유로 공연이 성사되지 않아 국내 오페라 애호가들은 큰 갈증을 느꼈다.
윤이상의 천재적인 음악을 23년 만에 다시 들은 오페라 팬들은 해갈의 기쁨을 만끽했다.
'심청'은 해외 관객들도 곧 만난다.
2024년 불가리아 소피아국립국장, 헝가리 에르켈국립극장, 이탈리아 볼로냐시립극장에 이어 2026년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rosina@chol.com /연합뉴스
관객의 찬사를 받은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프로덕션에 이어 1999년 예술의전당에서의 한국 초연 이후 23년간 공연 기회를 얻지 못했던 윤이상의 '심청'을 폐막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심청'을 본 관객들은 무엇보다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윤이상의 음악에 열광했다.
이 공연은 국내 현대 오페라 무대로는 매우 드문 수준인 유료관객점유율 71%를 기록했다.
오페라 '심청'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문화축전 일환으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예술감독 귄터 레너트가 윤이상에게 작곡을 맡긴 작품이다.
동서양 음악이 조화를 이루고 현대 서양음악에 새로운 출구를 제시해 '모든 문화의 화합'이라는 뮌헨 올림픽 슬로건에 부합했다.
한국 초연 때 지휘를 맡아 윤이상의 '심청' 음악에 정통한 지휘자 최승한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오케스트라인 디오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오케스트라는 서막 초반부터 서양악기로 국악기 음향을 만들어내는 윤이상 음악의 특성을 탁월하게 구현했다.
하프와 첼레스타(건반악기의 일종)가 심청의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점도 돋보였다.
음 하나하나의 지속과 떨림, 파도와 폭풍우를 묘사하는 격렬한 사운드, 주역 아리아에 담긴 가슴을 흔드는 간절한 진심, 합창단(대구오페라콰이어와 벨레 커뮤니티 코러스)이 전하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삶의 윤리, 그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었다.
일반적인 오페라 공연 준비 기간의 세 배 이상이 필요했던 '심청'의 긴 연습 기간에 출연진과 스태프가 쏟은 노력이 드러난 결과로 보였다.
원작대로 독일어로 노래한 이번 공연에서 대사가 노래로, 또 노래가 대사로 이어지며 바뀌는 '심청'의 음악적 구조에 익숙해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심청 역의 소프라노 김정아는 어떤 오페라 배역보다 어려운 역할을 경이로운 발성 테크닉과 음악적 해석으로 소화해냈다.
인당수에 뛰어들기 전 가장 극적인 아리아의 최고음에서도 김정아의 아름다운 음색은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심봉사 역의 바리톤 제상철은 눈 뜨고 싶은 욕망과 딸에 대한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을 적절하게 변화하는 음색과 연기로 표현해 큰 호응을 끌어냈다.
설화나 판소리 '심청'에서보다 훨씬 강도 높은 악역이 된 뺑덕 역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은 죄책감 없이 거짓을 일삼는 캐릭터의 특징을 유연한 가창과 유머 감각으로 보여줬다.
심청 어머니 옥진 역의 소프라노 강수연은 파워 넘치는 가창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왕 역의 바리톤 오승용을 비롯해 아낙네 세 명 등 여러 조역 역시 배역에 어울리는 연기로 극에 활력을 더했다.
이번 프로덕션 연출가 정갑균은 상자 형태로 분할한 단순한 무대 디자인을 통해 대본과 음악의 감동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연출 노트에서 "자기희생, 죽음, 부활, 대관(戴冠)으로 이어지는 강렬한 스토리와 천상·지상·물속 세계로 나뉘는 다양한 세상을 매우 단순하게, 또 한 편의 수묵화처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흰 의상과 검은 무대, 영상 효과로 인해 때로 흑백영화 같은 인상을 준 무대는 1막과 2막 사이 막간극에서 물속 세계를 표현할 때 오묘한 색채감으로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용왕 역 5명과 용왕의 신부 5명이 함께 노래하는 물속 장면의 독특한 의상과 조명, 영상 효과 덕분에 관객은 마치 홀로그램을 보는 듯한 독특한 환상 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영상 속 거대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쏟아지는 폭포는 이 오페라의 토대가 된 도가의 '무위자연'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무대에서 영상은 특히 큰 역할을 해냈다.
2막에서 심봉사는 딸 심청의 혼인 잔치에서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지식에 눈이 멀어 딸과 이웃을 챙기지 않은 채 이기적으로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토로한다.
심봉사의 개안이 '기적이 아닌 자기반성에 따른 결과'라는 쿤츠의 대본은 실제로 도교 일각에서 형성된 '공적인 고백과 참회로 병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주장과 관행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행위를 통해 심봉사 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병자들이 다 낫게 된다는 설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오페라 '심청'은 그동안 여러 이유로 공연이 성사되지 않아 국내 오페라 애호가들은 큰 갈증을 느꼈다.
윤이상의 천재적인 음악을 23년 만에 다시 들은 오페라 팬들은 해갈의 기쁨을 만끽했다.
'심청'은 해외 관객들도 곧 만난다.
2024년 불가리아 소피아국립국장, 헝가리 에르켈국립극장, 이탈리아 볼로냐시립극장에 이어 2026년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rosina@chol.co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