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 순국 90주기 추모식 서울현충원서 개최
국가보훈처는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90주기 추모식을 17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가 '아흔 번째 난잎'을 주제로 여는 행사에는 이회영 선생 후손인 이종걸 기념사업회장과 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 박민식 보훈처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한다.

추모식을 마친 후에는 이회영 선생의 젊은 시절 활동 터였던 '쌍회정 터'와 '상동교회'를 둘러본 뒤 이회영기념관으로 이동해 특별기획전 '나는 이은숙이다'와 특별공연을 관람한다.

기획전은 이회영 선생 아내이자 동지였던 이은숙 선생이 집필한 수기 '서간도시종기'의 뜻을 형상화했다.

1867년 서울 출생인 이회영 선생은 구한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넷째 아들로,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명문대가 자손임에도 일신의 안락과 영화를 버리고 구국운동에 몸을 바쳤다.

선생은 1910년 12월 이석영(1991년 애국장)·이시영(1949년 대한민국장) 선생 등 6형제와 가족 등 50여 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당시 이회영 선생 여섯 형제가 독립운동 자금으로 쌀 6천 석을 내놨는데 이는 현재 기준 약 600억 원으로 추산돼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회영 선생은 수많은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한 1898년 민중계몽 운동, 1905년 을사오적 규탄, 1906년 안창호·전덕기·양기탁·이동녕·신채호·노백린 등과 함께 설립한 비밀결사 신민회 활동 등이 있다.

이외에 민족 교육과 독립운동 인재 양성을 위한 1907년 서전서숙 및 1908년 상동청년학원 개설, 청산리전투의 주역들을 배출한 1912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931년 항일구국연맹 조직 등도 전해진다.

선생은 1932년 만주에 연락 근거지를 확보하고 지하 공작망을 조직할 목적으로 상하이에서 다롄으로 배를 타고 가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당한 끝에 11월 17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기며 우리 국민이 선생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언제나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