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회담서 할 말 하되 강경 표현 자제하며 '공존' 강조
내부과제 산적 상황서 미중관계 관리하며 美에 맞설 힘 키울 듯
집권 3기 시진핑, 대미 정면충돌 피하며 '장기전' 대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대 외교 이벤트인 미중 정상회담에서 '충돌 불사'의 결기보다는 양국 관계를 장기전 모드로 관리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지난달 16∼22일 열린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거쳐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첫 외국 방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가장 먼저 만났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4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시 주석의 집권 3기 대외정책 구상을 가늠할 풍향계로 볼 수 있다.

이 회담에서 시 주석은 대만 독립 반대, 미국의 무역 및 기술 분야 대 중국 견제와 디커플링(탈동조화) 반대 등 현안에 대해 자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했다.

특히 대만에 대해서는 "중·미 관계에서 넘으면 안 되는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고 밝힌 뒤 "누구든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하려 한다면 그것은 중국의 민족 대의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 주석의 대만 관련 경고는 '무력사용 포기 절대 불가'나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는 등 자신이 이전에 했던 초강경 표현과 비교해 절제돼 있었다.

또 중국 측 회담 결과 발표문에는 대미 견제성 내용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미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이 더 많았다.

특히 "중국은 현재의 국제질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할 의도가 없다"고 밝힌 대목에서는 중국을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도전 세력이자 현상 변경 세력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읽혔다.

그러면서 "중국과 미국의 성공은 서로에게 도전이 아닌 기회"라며 "세계는 두 나라가 스스로 발전시키고 함께 번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시 주석이 자신의 집권 1기 때인 2013년 방미 중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한 말을 상기시켰다.

당시 시 주석은 양국이 '신형 대국관계'를 만들자면서 "태평양은 미·중 양국을 모두 포용할 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서태평양에서의 중국 지분을 인정하라는 전략적 함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 이 발언은 미국의 경계심을 사 미중 전략경쟁 본격화의 씨앗을 뿌린 일로 평가됐다.

그로부터 9년 후 미중 전략경쟁이 극도로 심화한 상황에서 같은 민주당 소속 미국 정상에게 시 주석이 '태평양' 대신 '세계'를 거론한 것에는 강대국 간의 '이익 분할' 또는 '영역 구분'보다는 '책임 있는 공존'의 필요성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읽혔다.

또한 시 주석은 보건, 식량안보,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와 관련한 대화와 협력 필요성, 양국 외교·경제 당국 간의 소통 유지 등에 뜻을 같이함으로써 미중관계를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전으로 돌리는 방향성에 동의했다.

그렇지만 시 주석이 대미 '유화책'을 택했다고 보긴 어렵다.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포기 불가, 전략 핵 억지력 강화, 핵심 기술 자립도 제고 등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한 대미 전략과 전술은 이미 당 대회 계기에 선포했기 때문이다.

다만 객관적인 국력 차이를 부인할 수 없고, 중국 내부적으로 코로나19 방역 문제와 경제 성장 둔화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장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득책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반도체 등 산업망 디커플링 공세를 무디게 하고, 미국을 포함한 대서방 관계를 관리해가면서 차근차근 미국에 맞설 힘을 키우겠다는 시 주석의 장기전 포석이 이번 정상회담에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15일 "전반적으로 시 주석에게서 힘에 바탕을 둔 '대국외교'를 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고 평가했다.

문 교수는 "다만 시 주석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투쟁'보다는 안정적 관리 쪽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며 "쟁점 관련 입장 표명에서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균형'을 취하려 노력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시 주석이 "대만을 포함한 핵심 이익들을 미국으로부터 존중받으며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힘을 증진시켜 나가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시 주석 메시지는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할 의도가 없고 미국의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지만, 대만을 포함한 중국의 핵심 이익은 존중해 달라는 것으로, 후진타오 집권 후반부터 중국이 제기해온 '신형 대국관계'의 내용과 유사했다"고 부연했다.

집권 3기 시진핑, 대미 정면충돌 피하며 '장기전' 대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