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성(性) 산업은 남성 주도하에 이뤄졌다.

여기에 반기를 든 여성들이 있었다.

1970년대 미국에서 활동했던 페미니스트 섹스토이 숍 창업자들인 델 윌리엄스와 조아니 블랭크다.

이들은 성 산업과 섹스토이 시장을 개척한 기업인이자, 성적 쾌락과 섹슈얼리티를 추구하는 섹스 포지티브(sex-positive)한 삶의 방식이 여성의 역량을 강화한다고 믿은 페미니스트였다.

이들이 운영한 섹스토이 숍에서 여성들은 쾌락 향상에 도움이 되는 여러 물건을 살 수 있었다.

또한 전문성을 지닌 직원들과 소통하며 성 지식을 얻고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섹슈얼리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남성중심 성 산업에 반기든 여성들…신간 '바이브레이터의 나라'
린 코멜라 미국 네바다대 교수가 쓴 '바이브레이터의 나라'(오월의봄)는 윌리엄스와 블랭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미국 섹스토이 숍의 내밀한 이야기를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섹스 포지티브 소매업자들이 사회운동가를 겸업하고, 상품이 해방의 도구로 규정되며, 소비자는 오르가슴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약속을 믿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세상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1974년에 뉴욕에서 섹스토이 숍을 열었다.

백인 여성을 주요 고객으로 삼은 업체였다.

블랭크는 197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성적 지향이 다양한 여성과 남성을 비롯해 모든 사람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섹스토이 숍을 표방했다.

스타일은 달랐지만, 섹스 포지티브라는 대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체성은 같았다.

섹스토이 숍 직원들은 안전하고도 해방적인 성 지식을 고객에게 전파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부침도 있었다.

상업적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다.

섹스토이 숍은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에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었다.

업계는 '이윤을 창출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전문 경영자를 영입하는 등 시장 친화적인 행보를 보였다.

저자는 "섹스 포지티비티란 결코 성적인 것은 모든 사람이 대가 없이,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섹스 포지티비티는 페미니스트 소매업자가 자기 사업체, 직원, 그리고 고객에게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계속 협상해야 하는 성적인 신념 체계"라고 말한다.

저자는 섹스토이 숍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일정 기간 판매 직원으로 일하며 책을 썼다고 한다.

그 덕택에 책은 창업자, 제조자, 홍보 담당자 등 업계 종사자들의 내밀한 인터뷰가 생생하게 담겼다.

조은혜 옮김. 50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