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넨 너무 뚱뚱해.”

2007년 미국 뉴저지의 한 빵집. 버터크림빵 여섯 봉지를 사려던 스물아홉 수잔 엥고에게 몸집이 작은 한국 할머니가 말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할머니였다. 그는 빵집 사장에겐 “왜 얘한테 이런 빵을 주냐?”고 나무랐다. 엥고는 처음 본 할머니의 말에 당황했다. 다만 모욕적으로 느끼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말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부모님 고향인 카메룬에 갈 때 친척들이 건네던 그런 걱정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엥고는 물었다. “그럼 저는 뭘 먹으라는 건가요?” 할머니는 답했다. “한국 음식. 한식이 최고지!” 그렇게 둘의 기이한 인연이 시작됐다. 할머니는 일요일마다 한인 마트인 H마트에서 엥고를 만나 한식 재료를 골라줬다. 엥고는 그걸로 김치찌개, 비빔밥, 된장찌개, 미역국 등을 만들어 먹었다. 첫 달에 13㎏, 1년 만에 50㎏이 빠졌다. 시간이 흘러 엥고는 한국계 미국인 남자와 결혼하고 이름을 ‘아프리카 윤’(사진)으로 바꿨다.

이 같은 경험을 담은 책이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최근 한국에 <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파람북)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현재 하와이 오아후에 사는 윤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식은 제 몸만 아니라 마음에까지 큰 영향을 줬다”며 “할머니는 내 구원자였고 한식은 내가 평생 먹어야 할 ‘인생 푸드’가 됐다”고 말했다.

하와이로 이사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집 주변에 H마트가 있느냐였다.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계란말이와 미역국이다. “미역국은 우리 가족이 너무 많이 먹어서 매일 바다에 가서 미역이라도 따와야 하나라고 농담할 정도죠.”

윤은 뉴욕 셀럽이었다. 유엔 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와서 여섯 살이던 1984년 유엔총회에서 첫 연설을 했다. 세계 어린이의 날을 맞아 각국 어린이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발표할 때였다.

열두 살엔 ‘에이즈에 대한 아프리카의 행동’이라는 단체를 공동 설립했고, 뉴욕대 티시예술대학을 졸업한 뒤엔 본격적으로 미디어 사회 활동가로 나섰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캠페인을 벌이고, TV에 나와 유명 인사를 인터뷰했다. 2003년 유엔에서 ‘뉴욕 에이즈 영화제’를 열었고, MTV 회장의 눈에 띄어 ‘싱크 MTV’ 캠페인을 맡기도 했다.

왕성한 활동 속에서 몸과 마음은 망가지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 그로 인한 폭식과 음주로 58㎏였던 몸무게가 114㎏까지 늘었다. 한국 할머니를 만난 게 그 시기였다. 한국 음식이 처음은 아니었다. 유엔 국제학교 시절 한국 아이가 가져온 김치를 맛봤다. 어른이 돼선 친구 따라 찜질방에 가서 팥빙수도 먹었다. 불고기도 즐겨 먹었다.

윤은 현재 전 세계에 한국 음식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을 알리는 문화·엔터테인먼트 기업 블랙유니콘도 세웠다. 페이스북에선 ‘코리안 쿠킹 프렌즈’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몸이 안 좋을 때나 마음이 아플 때마다 한식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쌍둥이를 두 번 낳고, 그중 한 아이가 죽었을 때, 산후우울증에 걸렸을 때도 그랬다. 다시 한번 몸과 마음이 무너지려던 그를 한식이 지탱해줬다. 이 책도 그래서 쓰게 됐다고 했다. 10여 년 전 할머니를 만난 기억을 떠올리면서.

H마트에서 만나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윤은 “때때로 ‘나를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