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은 '작별하지 않는다'·'가능주의자'·'문학의 열린 길'·'백의 그림자'
한강 "우리가 연결돼 있단 믿음 붙잡고 써"·나희덕 "어둠에서 희미한 빛 찾으려 해"
제30회 대산문학상에 한강 작가·나희덕 시인·한기욱 평론가 등
제30회 대상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소설), 나희덕(시), 한기욱(평론), 한국화·사미 랑제라에르(번역)가 각각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9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4개 부문 수상자를 이같이 발표했다.

한강 작가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나희덕 시인은 '가능주의자', 한기욱 평론가는 '문학의 열린 길', 한국화·사미 랑제라에르 번역가는 황정음의 '백의 그림자'(Cent ombres)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가 광주와 제주 4·3을 잇고 뒤섞으며 지금 이곳의 삶에 내재하는 그 선혈의 시간을 온몸으로 애도하고 '작별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시집 '가능주의자'(문학동네)는 반딧불이처럼 깜빡이며 가 닿아도 좋을 빛과 어둠에 대해, 현실 너머를 사유하는 결연한 목소리로 들려준 점을 높이 평가했다.

평론집 '문학의 열린 길'(창비)은 동시대 문학 공간과 문제적 문학에 대한 치열한 비평적 대화를 끈질기게 추구한 점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프랑스어로 번역돼 현지 베르디에 출판사에서 출간된 '백의 그림자'는 원문에 얽매이기보다 작가 특유의 울림과 정서가 외국 독자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여 문학성을 살린 점을 인정했다.

제30회 대산문학상에 한강 작가·나희덕 시인·한기욱 평론가 등
한강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고서 최근 1년 넘게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쓰지 못했다"며 "(이번 수상이) 이제 그만 쉬고 다시 글을 열심히 써보라는 말씀 같아서 아침마다 책상으로 가서 글을 쓰는 루틴을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수상작에 대해 "무고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고, 결국은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믿음을 붙잡고 소설을 썼다"며 "언제나 우리 옆에 공기처럼 접하는 아주 많은 죽음 속에서 그런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음 소설을 향해 메모하고, 시작하는 몸과 마음 상태를 만들려고 운동하며 시동을 걸고 있다"며 "올겨울부터 써서 내년 가을이 돼야 신작이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희덕 시인은 "코로나 기간에 '가능주의자' 속 시들을 쓰면서 '자욱하고 흥건한 시대를 시는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란 질문을 내내 던졌다"며 "언제부턴가 제 시에 삶보다 죽음과 시대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다.

여전히 세상은 힘들고 슬픔에 잠겨 있는데 상을 받는 것 자체가 무겁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수상작에 대해 "시집 제목에는 이 현실의 어두운 전망 속에서라도 희미한 빛을 찾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들어있다"며 "손쉬운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현실 불가능성을 살아내며 거기에서 길어 올린 가능성을 뜻한다.

표제시에 '어둠의 빛'이란 표현을 썼는데, 어둠 자체에서 빛을 끌어내야 한다는 의미"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시가 하는 역할은 스러져 가는 것, 죽어가는 존재, 지워져 가는 목소리를 살리고 다정하게 곁을 지키는 일"이라며 "9권의 시집까지 사람에 대해 썼는데, 팬데믹 이후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물질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접했다.

(지금 쓰고 있는) 10번째 시집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 바치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30회 대산문학상에 한강 작가·나희덕 시인·한기욱 평론가 등
한기욱 평론가는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만감이 교차했다"며 "이태원 참사가 떠올라 기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한국 문학 일선에서 편집자, 비평가로서 벅찬 삶의 연속이었다.

한국 문학은 죽었다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한국 문학을 하며 기뻤고 보람 있었고 슬프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또 "한류와 K-문화가 주목받는 근저에는 한국 문학이 있다고 믿고 살아왔다"며 "한국 문학 독자 수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20대 여성 등 젊은 독자는 문학을 소중히 여기고 있고 한국 소설과 시의 수준은 영미권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번역 부문을 공동 수상한 한국화·사미 랑제라에르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고 있어 서면 수상 소감으로 대신했다.

한국화 번역가는 "한 땀씩 수를 놓듯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퉜다"며 "두 명이 한 작품을 번역하는 건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문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장이었다"고 전했다.

대산문학상은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 종합문학상이다.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 심사를 해 올해는 평론 부문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에게는 각 5천만 원씩, 총 2억 원의 상금을 준다.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소나무' 상패도 수여된다.

시상식은 다음 달 1일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다.

올해 시와 소설 부문 수상작은 내년 번역 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돼 해외에 소개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