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서울 한 편의점의 밸런타인데이 분위기. /연합뉴스
올 초 서울 한 편의점의 밸런타인데이 분위기. /연합뉴스
기업들이 연말 ‘소비 시즌’을 맞아 준비한 마케팅을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핼러윈이 과도한 상술과 마케팅 등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제기된 게 크다. 코리아세일페스타(11월1~15일), 카타르월드컵(11월20일~12월18일), 크리스마스(12월25일)까지 이어지는 대목 마케팅이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단 우려에 움츠려들면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그간 유통업체들이 활발히 전개해온 '데이(Day) 마케팅'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으로 판촉 활동이 어려웠던 기업들로선 올해 연말 데이 마케팅으로 특수를 기대했지만 "일단 자중하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통상 4분기는 유통 업계에서 최대 대목으로 꼽힌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중국 광군제 등 연중 최대 쇼핑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라 국내 유통 업체들도 초대형 행사를 기획해 대대적으로 진행해왔다. 그만큼 매출도 한 해 중 가장 크게 뛰는 기간이지만 뜻밖의 변수를 만난 것이다.

우선 업계에선 빼빼로데이(11월11일) 마케팅을 전면 철회하거나 축소했다. 코로나19 이후 첫 빼빼로데이 행사를 준비하던 롯데제과는 마케팅 활동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스틱 과자 포키(Pocky) 제조사 해태제과도 마케팅 중단을 결정했다.
지난해 한 서울의 대형마트에 빼곡히 쌓인 빼빼로. /연합뉴스
지난해 한 서울의 대형마트에 빼곡히 쌓인 빼빼로. /연합뉴스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 업체들은 상품 발주가 완료된 상황이지만 행사에서 힘을 뺀다. 편의점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편의점 4사는 빼빼로데이를 맞아 준비했던 모든 이벤트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이벤트 진열 매대에 빼빼로를 배치만 하는 수준으로 행사를 축소 운영한다.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이미 입고된 빼빼로에 한해 특별한 마케팅 활동 없이 점포 내 이벤트 매대 진열 판매만 하기로 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업계는 이달 17일 예정된 대입 수학능력시험 관련 행사도 차분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백화점 업계 역시 연말 주요 이벤트인 크리스마스 맞이 매장 외부 단장 행사를 올해는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3일 크리스마스 외벽 장식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행사를 잠정 연기했다. 현대백화점은 크리스마스 점등 이벤트를 중단했다.

이달 20일 시작되는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마케팅에 열 올리던 주류업계 또한 자중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우선 브랜드 캠페인을 최소화했다. 카타르월드컵 공식 스폰서인 오비맥주는 불과 닷새 전만 해도 전방위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지만 이태원 참사라는 돌발 변수를 만났다. 회사 내부적으로 사태 추이를 지켜본 후 마케팅 규모와 시기, 오프라인 파티 행사 진행 여부 등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해 성탄절 이브 서울 중구 한 백화점 외벽에 걸린 화려한 조명. /한경DB
지난해 성탄절 이브 서울 중구 한 백화점 외벽에 걸린 화려한 조명. /한경DB
쇼핑 대목인 연말 시즌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이처럼 유통업체들이 마케팅을 자제하면서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려던 소비심리가 다시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렇잖아도 고물가·고금리 흐름 속에 갈수록 지갑 열기가 어려워지는데 이태원 참사로 소비 분위기가 얼어붙는 게 아니냐는 것. AFP통신은 이날 "이태원 참사 여파로 소비심리가 더욱 빠른 속도로 얼어붙으면서 한국경제 성장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보도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연말 이후에도 데이 마케팅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빼빼로데이를 비롯해 밸런타인·화이트데이 등 연말부터 연초 시즌에 인파가 몰릴 수 있는 대규모 마케팅을 지양하고 기념일을 겨냥한 신제품 출시도 감소할 수 있다고 봤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단 애도 기간이 끝날 때까지 마케팅을 미루고 분위기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