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토스·카카오페이·핀다 등 3대 대출 비교 플랫폼을 통해 실행된 대출은 모두 71만2454건. 작년 연간 대출 건수(80만9687건)를 반년 만에 거의 따라잡았다. 대출 금액도 9조9951억원에 달해 '대출 호황'이었던 작년 연간 규모(12조6691억원)의 80%를 이미 채웠다. 그만큼 대출 비교 플랫폼이 활성화됐다는 뜻이다.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털 등 다양한 업권의 금융사 수십곳이 입점한 대출 비교 플랫폼에서 최근 유독 소비자의 선택을 많이 받고 있는 회사가 있다. 옛 P2P(Peer to peer·이용자간) 금융으로 익숙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체 '어니스트펀드'다. 온투업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대출 희망자와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금융업이다.

어니스트펀드가 지난 7월 새로 출시한 개인신용대출 상품은 최근 주요 대출 비교 플랫폼에서 다른 금융사보다 평균 두 배 이상 높은 선택률을 나타내고 있다. 고금리 예금의 등장으로 투자자 모집이 원활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대출 취급액은 상품 출시 두 달여 만에 100억원을 넘어섰다. 자체 개발한 머신러닝 기반 대안신용평가모델(CSS)을 통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와 높은 한도를 제시한 것이 통했다는 설명이다.
서울 여의도 어니스트펀드 본사에서 만난 신윤제 어니스트펀드 최고데이터책임자(CDO) 겸 인공지능랩장은 "순수 AI 기반의 CSS를 가동하면서 대출 심사 변별력이 크게 높아졌다. 리스크를 통제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에게 대출을 승인해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라며 "타사 대비 대출 한도는 약 1.4배 높이고, 금리는 저축은행 평균 금리보다 2.6%포인트 더 낮췄다"고 했다.

대출 업무가 핵심인 금융사에 있어 신용평가는 가장 손꼽히는 역량이다. 대출 비교 플랫폼 활성화로 소비자가 앉아서 수십 개 금융사의 대출 조건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개인의 갚을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역량은 더욱 중요해졌다.

신 CDO는 "지금처럼 비대면 대출 비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다른 금융사와 차별화되는 대안신용평가모델을 갖추는 게 핵심"이라며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고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환경에 발맞춰 대내외 거시 지표도 개인 신용평가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3년 신용평가 솔루션 전문가, 어니스트펀드로

어니스트펀드는 2015년 2월 설립됐다. 국내에 P2P금융을 내건 업체가 다섯 곳이 채 안 됐을 때다. 어니스트펀드는 업계 최초로 자동분산투자시스템을 도입하고, 개인신용대출은 물론 부동산담보대출, 부동산자산유동화대출(ABL)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백화점식으로 출시하며 종합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었다. 올 9월 말 기준 이 회사의 누적 투자금액은 1조2811억원, 연평균 수익률은 11.39%에 달한다. 대출잔액 기준으로는 48개 등록 업체 중 3위다.

하지만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규제 공백 속에 2018년 즈음에는 P2P 업체가 200곳 넘게 난립했다. 부실·사기 등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이어지며 P2P 금융 전체가 뭉뚱그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어니스트펀드처럼 업력이 길고 취급 대출 규모가 큰 상위 업체도 찬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어니스트펀드는 개인 투자자 유치가 어려워졌던 2019년부터 개인신용대출 취급을 아예 중단했다.

이후 2020년 온투업법이 시행되면서 업계도 재정비를 거쳤다. 지난해 8월부터는 당국의 정식 승인을 받아 등록된 업체만 영업할 수 있게 됐다. 어니스트펀드는 지난해 8월 온투업자로 정식 등록하고 그 해 10월에는 산업은행·미래에셋증권으로부터 110억원 브릿지 투자도 유치했다. 사업을 정상화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어니스트펀드는 금융·신용평가·AI·법률 등 분야별 전문가를 대거 충원하고 올 7월엔 개인신용대출을 재개했다.
신윤제 어니스트펀드 최고데이터책임자(CDO) 겸 인공지능랩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어니스트펀드 제공
신윤제 어니스트펀드 최고데이터책임자(CDO) 겸 인공지능랩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어니스트펀드 제공
신윤제 CDO 겸 AI랩장은 어니스트펀드가 이 과정에서 영입한 핵심 인력이다. 국내 굴지의 신용평가사(CB)인 나이스평가정보에서 13년을 근무한 신 CDO는 지난해 10월 어니스트펀드에 합류했다. 솔루션팀 리더였던 그는 나이스평가정보에서 신용평가모델을 설계하고 금융사에 이를 도입하는 업무를 해왔다.

신 CDO는 "신용평가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CB사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운영하고 소비자의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은 금융사"라며 "비대면 대출, 금융 플랫폼의 성장으로 급변하는 시장에서 플레이어로서 직접 신용평가모델을 설계하고 운영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다른 업권이 아닌 온투업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온투업은 이제 라이선스를 받아 새롭게 시작하는 '리부팅' 단계"라며 "다양한 설계를 처음부터 할 수 있는 부분이 매력"이라고 했다.

머신러닝 AI만으로 신용평가
똑같은 리스크로 승인율 67%↑

어니스트펀드는 신 CDO 합류 직후 신용평가모델 고도화에 착수했다. 그 결과물이 현재 어니스트펀드가 운영 중인 'CSS 3.0'이다.

CSS 3.0은 순수하게 머신러닝 AI로만 대출 가능 여부와 금리·한도를 결정하는 게 특징이다. 과거 1.0, 2.0 버전은 전통적인 평점표(스코어카드) 방식이었던 것과 차별된다. 평점표는 10~20개 안팎의 정보를 토대로 개인의 신용을 점수를 매겨 평가하는 방식을 말한다. KCB·나이스 신용점수가 대표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금융사가 주로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평점표 방식은 가령 '12개월 내 대출 연체 건수' '2금융권 대출 건수'처럼 계량화가 쉬운 정보를 중심으로 신용을 평가한다. 12개월 내 연체가 한 건도 없었으면 50점, 한 건이면 38점, 두 건이면 0점을 매기는 식이다. 이렇게 여러 항목의 점수를 합쳐 전체 신용 점수를 산출한다.

항목당 점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설명하기 쉽다는 게 장점이지만, 대량의 다양한 데이터를 신용 평가에 반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평점표 방식의 한계다. 특히 대출 비교 플랫폼의 등장으로 대출 조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개인의 신용을 보다 정교하게 평가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런 문제점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어니스트펀드가 머신러닝 기반의 CSS 3.0을 개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니스트펀드는 100% 평점표 방식의 CSS 1.0, 평점표로 산출된 심사 결과를 머신러닝 기반 심사로 보정하는 CSS 2.0을 거쳐 이제는 100% 머신러닝으로 개인 신용을 평가하는 CSS 3.0을 도입했다.
신윤제 어니스트펀드 최고데이터책임자(CDO) 겸 인공지능랩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어니스트펀드 제공
신윤제 어니스트펀드 최고데이터책임자(CDO) 겸 인공지능랩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어니스트펀드 제공
CSS 3.0은 기존의 일반 금융 데이터 외에도 비신용 데이터 200여 개를 적용해 개인별로 더 정확하고 신속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가령 대출자가 재직하는 회사의 재무 정보나 온라인 행동패턴, 금융 심리데이터 등 훨씬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개인의 상환 능력을 추정할 수 있다.

신 CDO는 "평점표 방식은 태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10~20개 정보로 한정되지만 머신러닝을 활용하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무궁무진해진다"며 "여러 개 정보를 결합해 새로운 평가 항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머신러닝 기반 CSS의 장점"이라고 했다.

신용평가가 정교해지면 변별력은 올라간다. 어니스트펀드에 따르면 CSS 3.0은 종전 모델에 비해 변별력이 대폭 개선됐다. 숫자로 따져보면 대출 부실이 발생할 리스크는 동일하게 통제하면서도 승인율은 기존보다 67% 높일 수 있게 됐다. 반대로 승인율을 유지하면서 불량률(대출을 받아간 사람이 향후 연체를 일으킬 가능성)은 53%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리스크가 낮아지면 그만큼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다.

신 CDO는 "기존에는 대출을 받지 못했던 금융소외자에게도 새로운 CSS 하에서는 대출을 내줄 수 있다. 포용적 금융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동일한 상품이어도 기존보다 더 높은 승인율이나 더 낮은 금리를 제시하는 게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대출 플랫폼서 선택률 2~3배 더 높아

실제 어니스트펀드가 지난 7월 재개한 개인신용대출 상품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와 높은 한도로 대출 비교 플랫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어니스트펀드에 따르면 62개 금융사가 입점한 대출 비교·중개 플랫폼 핀다에서 대출을 조회해본 사람이 어니스트펀드를 선택할 확률은 다른 금융사 대비 평균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니스트펀드를 찾는 대출 희망자의 대부분은 신용점수가 770점 안팎이다.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같은 제2금융권 대출을 주로 이용하는 중·저신용자들이다. 어니스트펀드 대출의 경우 기존 저축은행에 비해 대출 금리는 평균 2.6%포인트 낮게, 한도는 약 40% 높게 나오다 보니 수요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어니스트펀드의 개인신용대출 상품 금리(수수료 포함)는 최저 연 5.4%, 최고 연 17.7% 수준이다.

신 CDO는 "현재 대출 비교 플랫폼에서 유입되는 건수를 보면 하루에만 약 5000억원의 대출 수요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지금은 투자자금 유치 문제로 극소량만 대출을 내주고 있지만 기관투자 길이 열리면 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내외 거시지표도 신용평가에 반영

어니스트펀드는 조만간 또 한 번의 CSS 업그레이드에 나설 계획이다. 경제 성장률, 실업률, 기준금리, 자영업자 비율, 다중채무자 비율 등 다양한 대내외 거시 지표를 CSS에 반영하는 게 핵심이다.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경기 침체 우려가 제기되는 환경에 발맞춰 개인 신용평가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이렇게 되면 가령 금리가 인상되는 상황에서는 기존에 신용점수가 800점으로 평가됐던 사람도 700점으로 간주하고 보다 보수적으로 대출을 내줘야 한다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신 CDO는 "이제까지의 신용평가는 사실 과거의 데이터가 기반인데, 지금처럼 금리가 빠르고 급격하게 오르는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희귀하기 때문에 과거 데이터만 반영해서는 개인이 받을 충격과 상환 능력의 변화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보다 동적인 신용평가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니스트펀드는 내년중 소액 대출, 자영업자 대출, 신파일러 대출 등 특정 고객군에 맞춰 CSS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하고 맞춤형 대출 상품도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데이터 확보부터 상품 설계 및 출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머신러닝으로 설계하겠다는 게 신 CDO의 포부다.

그는 "AI랩장으로서 신용평가뿐 아니라 고객 유치, 상품 설계, 대출 실행, 사후관리 등 모든 과정에서 AI 기반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게 목표"라며 "해오던 방식과 관행이 얽매이지 않는 핀테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도권 진입 이전의 일들로 온투업에 대해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남아있는 게 사실이지만, 연체율과 부실률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믿을 수 있는 금융사라는 것이 향후 1~2년 내 증명되면 자연스럽게 평판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