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게일인터 제기 손해배상 기각
'합작관계' 게일 일방적 사업중단에
포스코건설, 게일 측 합작사 지분 처분
중재판정부 “사업 완수 위한 합리적 결정”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제상업회의소(ICC)는 “포스코건설이 합작계약을 위반했다”며 게일인터내셔널이 2019년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중재에 대해 최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중재 판정부는 포스코건설이 IBD 개발사업 과정에서 게일인터내셔널 측에 취한 조치가 모두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분쟁은 최근 10년간 국내기업이 휘말린 상사중재 중 가장 큰 규모로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중재는 포스코건설이 합작관계를 정리한 데 대해 게일인터내셔널 측이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포스코건설과 게일인터내셔널은 2002년 합작회사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를 세워 IBD 개발사업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인천시가 송도를 국제도시를 만들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한 프로젝트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두 배인 IBD 부지(573만㎡)에 24조원을 투자해 주택·업무·문화·교육·의료 시설 등을 짓는 것이 골자다. 포스코건설은 시공사, 게일인터내셔널은 시행사로 이 개발사업에 참여했다.
합작법인 출범 후 한동안 개발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주택(더샵 퍼스트월드), 공원(송도센트럴파크), 국제학교(채드윅 국제학교), 쇼핑몰(커낼위크), 골프장(잭니클라우스CC) 등이 줄줄이 IBD 부지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13년 후인 2015년부터 양사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NSIC 대표를 맡은 스탠리 게일 게일인터내셔널 회장이 포스코건설 측에 자신의 개인소득세 중 1000억원 이상을 분담할 것을 요구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게일 회장은 “포스코건설도 IBD 개발로 이익을 냈으니 세금을 분담하라”고 했다. 포스코건설은 “개인 세금은 기업이 부담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면서 “게일인터내셔널 측이 사업 공사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피해를 봤다”고 맞섰다.
게일 회장은 또한 포스코건설이 NSIC의 업무대행사인 GIK에 배당금을 제 때 지급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하며 그해 6월 IBD 개발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포스코건설은 수차례에 걸쳐 협상을 시도했지만 게일인터내셔널 측은 응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공사 중단에 포스코건설은 6개 부문으로 이뤄진 개발사업 패키지 중 3개 패키지(4~6)에 대해선 착공조차 못한 채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2017년 6월 말 기준 패키지 4~6의 우발채무 규모만 1조4000억원에 달했다. 당시 IBD 개발사업 관련 우발채무(약 1조9000억원)의 상당금액을 차지했다. 이 무렵 NSIC가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관련해 채물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상황은 더욱 꼬여갔다.
이에 포스코건설은 더 이상은 함께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게일인터내셔널과의 결별 절차를 밟았다. 포스코건설은 2017년 하반기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인 NSIC의 대출금을 대신 갚았다. 이를 통해 PF 대출약정의 담보로 제공됐던 게일인터내셔널의 NSIC 지분(70.1%)을 취득했다. 이 지분을 2018년 다른 외국회사인 ACPG와 TA에 매각했다. 이들을 새로운 파트너로 택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게일인터내셔널이 2019년 4월 중재를 제기하면서 소송전이 시작됐다.
중재판정부는 포스코건설의 이 같은 경영 판단을 IBD 개발사업을 완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결론 지었다. 게일인터내셔널은 “본사의 NSIC 지분을 포스코건설이 처분한 것은 신의성실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중재판정 결과는 외국기업과 합작사업을 하고 있는 다른 국내 기업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 국제분쟁 전문 변호사는 “외국 대기업과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고 적법하게 대응하면 두려울 것이 없음을 보여준 판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