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여인숙 골목…100년 전 빨래터 품고 문화공간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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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 쇠퇴로 문 닫은 배다리 여인숙들…미술관·카페로
공간은 기억을 간직한다.
1930∼1960년대 인천 동구 배다리 골목을 지키던 여인숙들이 세월의 흐름에 사라졌어도, 공간만은 그대로 남아 한 세기를 담고 있다.
개항기 배다리 마을은 일종의 변방이었다.
일본인 치외법권 지역에서 밀려나 삶의 터전을 잃은 조선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6·25 전쟁 이후에는 고향으로 미처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들도 배다리로 몰렸다.
사람들이 모인 곳엔 장도 크게 섰다.
만물상으로 통하던 배다리 시장은 당대 인천의 가장 큰 시장으로 자리매김해 인근 김포에서도 찾아올 정도였다.
시장이 번창하자 인근 골목에는 진도·길조·성진 여인숙이 나란히 들어섰다.
이들 여인숙은 성인 한 명이 누울 만한 쪽방 몇 칸에 공동욕실을 갖추고 손님을 받았다.
한동안 장꾼과 인근 공장 노동자들의 쉼터로 성업했지만 시간의 흐름은 이길 수 없었다.
원도심 쇠퇴로 사람이 줄고 상권마저 침체하며 여인숙을 찾던 이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결국 이들 여인숙은 수년 전 모두 문을 닫았지만 옛 공간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동구는 2020년 초 17억6천여만원을 들여 여인숙 3곳 부지를 사들였다.
복합 문화공간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을 조성하고, 민간 운영자로 잇다스페이스를 선정했다.
2년간 공사를 거쳐 길조 여인숙은 카페로, 성진 여인숙은 마을 정원으로, 진도 여인숙은 작은미술관과 체험형 스테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대대적인 건물 철거 공사를 했지만 기본 뼈대와 보수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되도록 손대지 않았다.
수십 년 된 서까래 위에 새 지붕을 얹는 등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남기려 했다.
이 과정에서 길조 여인숙에서는 1920년대 빨래터도 발견됐다.
당시 공공기관인 인천부청이 1924년 배다리에 만들었던 마을 공동 빨래터 중 하나가 공사 도중 나타난 것이다.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 운영을 맡은 정창이(48) 작가는 27일 "개관 한 달 전 배수구를 만들려고 돌을 뚫다 보니 빨래터 축대로 보이는 공간이 나왔다"며 "관련 연구 자료를 토대로 이 일대에 빨래터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결국 카페 이름을 길조 여인숙에서 따온 '길조'에서 '빨래터 카페'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1920년대 빨래터부터 1930년대∼1960년대 여인숙까지 품은 이 건물은 그 자체로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며 "어찌 보면 낡은 이곳에 미래의 젊은이들이 와서 그 문화와 역사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일 문을 연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은 작은미술관에서의 개관전을 시작으로 전국 예술가 350명과 함께 하는 전시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은미술관에 마련된 체험형 스테이 공간에서는 국내외 작가들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다음 달부터는 청년 작가들의 작품 전시전과 마을 인문학 강연 등을 연다.
정 작가는 "젊은 작가들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들을 발굴해 평론가와 매칭해주는 아트 코칭이나 개인전 개최 등 다양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며 "전국 작가들이 서로 모여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1930∼1960년대 인천 동구 배다리 골목을 지키던 여인숙들이 세월의 흐름에 사라졌어도, 공간만은 그대로 남아 한 세기를 담고 있다.
개항기 배다리 마을은 일종의 변방이었다.
일본인 치외법권 지역에서 밀려나 삶의 터전을 잃은 조선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6·25 전쟁 이후에는 고향으로 미처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들도 배다리로 몰렸다.
사람들이 모인 곳엔 장도 크게 섰다.
만물상으로 통하던 배다리 시장은 당대 인천의 가장 큰 시장으로 자리매김해 인근 김포에서도 찾아올 정도였다.
시장이 번창하자 인근 골목에는 진도·길조·성진 여인숙이 나란히 들어섰다.
이들 여인숙은 성인 한 명이 누울 만한 쪽방 몇 칸에 공동욕실을 갖추고 손님을 받았다.
한동안 장꾼과 인근 공장 노동자들의 쉼터로 성업했지만 시간의 흐름은 이길 수 없었다.
원도심 쇠퇴로 사람이 줄고 상권마저 침체하며 여인숙을 찾던 이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결국 이들 여인숙은 수년 전 모두 문을 닫았지만 옛 공간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동구는 2020년 초 17억6천여만원을 들여 여인숙 3곳 부지를 사들였다.
복합 문화공간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을 조성하고, 민간 운영자로 잇다스페이스를 선정했다.
2년간 공사를 거쳐 길조 여인숙은 카페로, 성진 여인숙은 마을 정원으로, 진도 여인숙은 작은미술관과 체험형 스테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대대적인 건물 철거 공사를 했지만 기본 뼈대와 보수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되도록 손대지 않았다.
수십 년 된 서까래 위에 새 지붕을 얹는 등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남기려 했다.
이 과정에서 길조 여인숙에서는 1920년대 빨래터도 발견됐다.
당시 공공기관인 인천부청이 1924년 배다리에 만들었던 마을 공동 빨래터 중 하나가 공사 도중 나타난 것이다.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 운영을 맡은 정창이(48) 작가는 27일 "개관 한 달 전 배수구를 만들려고 돌을 뚫다 보니 빨래터 축대로 보이는 공간이 나왔다"며 "관련 연구 자료를 토대로 이 일대에 빨래터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결국 카페 이름을 길조 여인숙에서 따온 '길조'에서 '빨래터 카페'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1920년대 빨래터부터 1930년대∼1960년대 여인숙까지 품은 이 건물은 그 자체로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며 "어찌 보면 낡은 이곳에 미래의 젊은이들이 와서 그 문화와 역사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일 문을 연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은 작은미술관에서의 개관전을 시작으로 전국 예술가 350명과 함께 하는 전시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은미술관에 마련된 체험형 스테이 공간에서는 국내외 작가들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다음 달부터는 청년 작가들의 작품 전시전과 마을 인문학 강연 등을 연다.
정 작가는 "젊은 작가들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들을 발굴해 평론가와 매칭해주는 아트 코칭이나 개인전 개최 등 다양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며 "전국 작가들이 서로 모여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