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게 그린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영화 '첫번째 아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
1년의 출산 휴가 끝에 회사에 복귀한 정아(박하선 분)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복귀 나흘 만에 아이를 돌봐주기로 했던 친정엄마가 쓰러지면서 간신히 되찾았던 일상은 산산조각이 난다.

14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맡길 곳은 없고, '괜찮은' 보모를 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남편 우석(오동민)은 보모에게 줄 돈이면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낫지 않냐며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정아는 원하던 한국 국적의 보모는 아니지만 아이를 세심하게 돌봐줄 것 같은 화자(오민애)를 고민 끝에 고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아무런 이야기 없이 아이를 데리고 오랜 시간 집을 비운 화자의 돌발행동으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섬세하게 그린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영화 '첫번째 아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용됐던 계약직 지현(공성하)은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 "기다리는 남자친구도 없으니 회사에 남아 일하겠다"는 말로 신경을 긁는다.

아이 일로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정아에게 팀장은 "그러다 밀려나는 수가 있다"는 충고를 건넨다.

그 어느 곳에서도 숨 쉴 공간을 찾을 수 없게 된 정아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버겁기만 하다.

영화 '첫번째 아이'는 출산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정아를 통해 대다수 한국 여성이 처한 돌봄 노동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박하선은 드라마 '산후조리원'과 '며느라기'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기혼 여성이 겪는 일들을 현실감 있게 연기해내며 몰입감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섬세하게 그린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영화 '첫번째 아이'
단순히 경력 단절의 위기에 놓인 여성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은 점도 흥미롭다.

감독은 아이의 보모로 등장하는 화자를 조선족으로 설정해 재중동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여실히 드러낸다.

정아와 지현의 묘한 심리적 갈등을 통해 불가피하게 경쟁 상황에 놓이는 약자의 모습도 담았다.

오동민이 연기한 남편 우석의 역할도 현실감을 끌어올리는데 한 몫을 한다.

육아로 힘들어하는 정아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권하는 그는 육아와 가사를 '집에서 쉬는 것'으로 간주하고, 마땅히 자신이 함께해야 할 일을 "도와준다"고 말한다.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대뜸 "당신은 잘못 없어"라며 건넨 엉뚱한 위로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나도 힘들다"며 되레 화를 내기도 한다.

연출을 맡은 허정재 감독은 시사회에 이어 열린 간담회에서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던 뒷모습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있다"면서 "그 이미지에 대한 궁금증에 관한 해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가 전반적인 사회 문제를 조금씩 다 가져가고 있어서 본 사람 각자가 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1월 10일 개봉.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