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3주년 기념식 26일 개최
안중근의사숭모회 주관으로 열리는 기념식에는 박민식 보훈처장,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한다.
행사에선 '안중근 장학금' 전달식도 진행된다.
안중근 장학금은 안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미래세대에 계승시키고자 2003년 시행돼 올해로 19회째를 맞는다.
올해는 개인 3명과 단체 3팀이 장학금을 받는다.
187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국권회복의 길을 강구하다가 귀국해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돈의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고종황제 폐위, 군대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으로서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해 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안 의사는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를 왕래하면서 구국의 방도를 모색하던 중 1909년에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一死報國·한 목숨을 바쳐 나라에 보답하다)을 맹세했다.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안 의사는 10월 26일 9시께 하얼빈역에서 러시아군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한 곳으로 이동하는 이토를 저격,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체포하려 달려드는 러시아군 앞에서 안 의사는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 의사는 러시아 헌병대에 붙들려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돼 심문과 재판을 받으면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양 평화 정착을 주장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는 안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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