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불법 자금 수사 때 '차떼기', '10분의1' 논란
대선 패자들, 줄줄이 檢 수사…이재명 연관 '주목'
정치권 뒤흔든 檢 대선자금 수사 20년만에 재등장
검찰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하면서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은 2002년 대선 이후 20년만이다.

정치자금법 개정 등 정치권의 자정 노력으로 대선에서 돈 문제가 투명해지는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검찰수사로 불법 대선 자금의 실체가 드러난다면 정치권에 큰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검찰로선 직전 대선 후보였던 야당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를 증거로 밝혀내지 못한다면 정치에 무리하게 개입하려 했다는 역풍을 피할 수 없는 만큼 '호랑이 등'에 탄 셈이 됐다.

정치권 뒤흔든 檢 대선자금 수사 20년만에 재등장
◇ '차떼기' 유행어 만든 대선자금 수사
불법 대선 자금이 수사대상이 된 사례는 2002년 대선 때였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3년부터 이듬해까지 2002년 대선에서 오간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그 결과 당시 한나라당(이회창 후보)과 민주당(노무현 후보)이 주요 대기업 등에서 각각 823억원과 113억원의 불법 자금을 모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나라당은 현대차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두차례 50억원이 담긴 스타렉스 승용차를 통째로 넘겨받는 수법으로 100억원을 챙겨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썼다.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내가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10분의 1'을 더 썼다면 그만두겠다"고 발언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검찰 수사로 노 전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이광재·여택수·최도술 씨 등이 잇따라 구속되거나 재판에 넘겨졌고, 이 전 총재 측 최돈웅·신경식·이흥주·김영일·서정우 씨 등도 사법부 판단을 받았다.

이 일로 정치자금법이 개정돼 정당후원회 제도가 폐지되는 등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이어졌다.

여야를 막론한 검찰의 초대형 수사에 국민적 지지가 이어졌고, 수사를 이끈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은 '국민 검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다만 측근이 줄줄이 구속되는 가운데서도 정작 후보 당사자는 입건되지 않은 채 사건이 마무리됐다.

정치권 뒤흔든 檢 대선자금 수사 20년만에 재등장
◇ 대선 11년 만에 수사받은 MB, 결과는 유죄
검찰이 대선 자금을 정면으로 수사하진 않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처벌됐다.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이 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에서 회삿돈을 빼돌린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이 드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07년부터 취임 후인 2008년 4월까지 김소남 전 의원에게서 4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 돈이 김 전 의원을 한나라당 비례대표 7번으로 추천해 당선되게 해주는 대가였고 불법 정치자금이었다고 보고 뇌물수수죄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모두 적용했다.

법원은 1∼3심 모두 이 전 대통령이 김 전 의원에게서 수수한 돈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인정했다.

정치권 뒤흔든 檢 대선자금 수사 20년만에 재등장
◇ 김대중·정주영·문국현…'대선 패자 잔혹사' 반복되나
이번 검찰 수사로 '대선 패자 잔혹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선 직후 검찰에 사법처리 된 첫 대선 후보는 1989년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88년 평민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서경원씨가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 등과 면담한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상 불고지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이후 1991년 국가보안법 개정에 따라 검찰이 공소를 취소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1992년 대선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3위를 기록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검찰 수사를 받은 뒤 정계를 떠나야 했다.

정 회장은 현대중공업 비자금 500억여원을 통일국민당에 유출하고 김영삼 당시 후보 측을 근거 없이 비방한 혐의(특경법상 업무상횡령·대통령선거법 위반)로 1993년 2월 불구속기소 됐다.

그는 기소 사흘 만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 치러진 17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도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추천을 대가로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불구속기소 됐다.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아 의원직을 상실하고 정계를 떠났다.

이재명 대표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해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지난달 8일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재판정에 서게 된다면 두 차례 기소된 대선 패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