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분야 최고 국제기구의 '든든한 축' 조유진 매니저·정용재 이사
日 20년째 담당자 파견하지만, 한국은 '0'…"국제무대 참여 더 많아지길"
"ICCROM은 문화유산 보존·복원 위한 공동체…아직 할 일 많죠"
많은 이들이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법하지만 'ICCROM' 혹은 '이크롬'이라는 국제기구는 낯설 듯하다.

정확한 명칭은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 문화유산 보존·복구 분야에서 최고 국제기구로 꼽히는 이곳은 1956년 제9차 유네스코 총회 결의에 따라 1959년에 등장한 정부 간 기구다.

현재 137개 가입국을 대상으로 문화유산 보존·복구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곳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문화유산 관리·정책에도 힘을 보태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다.

조유진 이크롬 세계유산 리더십 프로그램 매니저와 정용재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겸 이크롬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조유진 매니저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이크롬 본부의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다.

문화재청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며 조선왕릉, 남한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의 세계문화 유산 등재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는 2017년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뚫고 이크롬에 입성했다.

한국인 사무국 직원은 그가 처음이었다.

지난 9일 만난 조 매니저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여전히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라며 "지난 5년간 이크롬에서 근무하며 세계유산의 보존·관리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고 빈 곳을 최대한 메우고자 했다"고 말했다.

"ICCROM은 문화유산 보존·복원 위한 공동체…아직 할 일 많죠"
그가 맡은 세계유산 리더십 프로그램은 이크롬의 주력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조 매니저는 "현장에서 세계유산을 관리하는 관리자를 대상으로 이 유산(heritage)이 왜 중요한지, 이를 보호할 법적 체계가 어떠한지 등 전반적인 보존 관리에 대한 체계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 8월 국내에서 열린 교육 과정을 언급하며 "당시 세계 각국에서 온 21명이 참여했는데, 5년간 한다고 하면 100명 이상"이라며 "세계유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관리자들과 소통하는 네트워크가 마련되는 셈"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유산의 보존 관리에는 정해진 답이 없고 주어진 체계와 여건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유연성이 중요하다.

전문가를 벗어나 다양한 참여자를 확대하는 일에 기여했다고 평가받으면 좋겠다"며 아직 할 일이 많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화재청 산하 특수대학인 한국전통문화대의 교학처장이기도 한 정용재 문화재수리기술학과 교수는 2015년부터 이크롬 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크롬 이사회는 25명으로 구성되며 주요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사업 성과 검토 등을 담당한다.

이사는 전문가 개인 자격으로 입후보하지만, 사전에 자국 정부의 추천을 받아야 하므로 사실상 해당 국가를 대표해 활동한다고 볼 수 있다.

정 교수는 "이크롬은 문화유산의 보존·복원을 위한 기술, 경험이 한데 모여있는 집합체로서 세계인의 공동체"라며 "전문가를 비롯해 유산 관리 분야 연구진, 학생, 시민들까지 모두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학교 차원에서 이크롬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ICCROM은 문화유산 보존·복원 위한 공동체…아직 할 일 많죠"
정 교수는 "현재 일본이나 중국은 자국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도쿄문화재연구소는 2∼3주에 걸쳐 전 세계 보존 분야 전문가들에게 일본 종이 보존 기술을 교육하고 이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문화유산 가치를 각국 전문가에게 알리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교육 과정을 검토하고 있다"며 "여러 학과를 융합해서 무형유산을 유형으로, 또 디지털로 이어질 수 있는 과정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내년이면 임기가 만료되는 그는 "이크롬 이사는 4년씩 두 번만 할 수 있다.

좋은 프로그램이나 우리가 가진 경험, 기술을 나눌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며 웃었다.

두 사람은 유산 분야에서 네트워크(협력망) 관리는 필수라며 정부 차원에서 인적 교류·파견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례로 일본은 2년마다 1명씩, 올해로 20년째 문화유산 담당 직원을 이크롬에 파견 보내고 있다.

중국 역시 코로나19 상황 전까지 직원을 파견해왔으나, 한국은 그런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온라인 시대라고 해도 여전히 '맨 파워'가 중요하다"며 "우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등에서도 직원을 보내 세계의 큰 흐름을 보고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매니저 역시 "그간 일본에서 온 담당자 10명만 해도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중요한 네트워크가 된다"며 "한국의 다양한 유산 관리자들도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조 매니저는 한국의 문화유산 관리 정책에 대한 조언도 내놓았다.

그는 "어떠한 유산을 지정할 때 이 유산이 얼마나 독특한지, 다른 곳과 비교해 얼마나 탁월한지에 중점을 두는데 막상 지정한 뒤에는 보존 관리 방법이 일률적"이라며 "조금 더 세심한 접근과 방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ICCROM은 문화유산 보존·복원 위한 공동체…아직 할 일 많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