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민 말루프 작가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문학은 타인을 이해하는 열쇠"라며 이 같이 말했다.
"항공, 통신기술 발전으로 사람들끼리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먼 게 지금의 시대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문학은 나와 다른 문화,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듭니다."
1949년 태어난 말루프 작가는 레바논에서 나고 자랐지만 프랑스에서 집필 활동 중이다. 그는 베이루트 일간지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레바논 내전을 피해 20대에 프랑스에 귀화했다. 프랑스에서도 기자로 활약했다. 소설을 비롯해 역사와 문명 비평 에세이, 오페라 대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그는 레바논 민족의 수난사를 다룬 소설 <타니오스의 바위>로 1993년 프랑스 대표 문학상 공쿠르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학술기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됐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동방의 항구들>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말루프 작가의 작품은 전쟁 등 폭력적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그는 "저는 혼돈의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고,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라며 "제 작품과 박경리의 작가의 문학이 통하는 이유는 그 밑바탕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말루프 작가는 역사와 국가, 문학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라고 믿는다. "문학은 국가의 구조적인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말루프 작가는 "한국은 기적의 나라"라며 "레바논은 과거 잠재돼있는 기회, 가능성이 많은 나라였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풀지 못한 반면, 한국은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마치기 직전 말루프 작가는 특히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라며 다시금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오늘날 세계 정세가 슬프고 걱정스럽습니다. 우리에게는 문학이 필요합니다. 문학은 나와 다른 존재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니까요. 그러므로 문학, 문화를 정치나 경제의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박경리문학상은 <토지>를 쓴 소설가 고(故) 박경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된 문학상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시대의 아픔, 그리고 그와 함께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삶과 운명들을 끌어안아 문학으로 승화시킨 박경리 선생의 위대한 정신과 업적을 기념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작가에게도 상을 주는 국내 첫 '세계 문학상'이다. 토지문화재단과 원주시가 공동 주최하며 상금은 1억원이다.
강자모 세종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등 7명으로 구성된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말루프는 현대의 폭력적 사태와 사고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용서와 화해,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립되는 여러 가치의 충돌로 인해 개인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그의 작품들은 상호이해와 화합의 정신으로 인류 공동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세계문학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이 따로 없는 전원협의 체제다.
이날 간담회 사회를 맡은 허희 문학평론가는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 십자가 전쟁에 대한 아랍인의 시선을 전하면서도, 서구와 아랍 세계 양쪽의 모순을 적시했듯이, 말루프의 작품은 절대 악과 절대 선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고 했다.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3일 서울 롯데 시그니엘에서 열린다. 말루프 작가는 시상식 이후 원주 백운아트홀에서 열리는 축하공연, 17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진행되는 작가 대담회에서 한국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