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물가·4%대 기대인플레 이어져…1,430원대 환율도 금융위기 후 최고
미국 연속 자이언트스텝에 1%p 넘는 한미 금리차도 초읽기…베이비스텝 역부족
"금리 너무 빨리 올리면 이자 부담·소비위축에 경기 타격"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12일 다시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0%포인트(p)나 높였다.

4·5·7·8월에 이은 사상 첫 5연속 인상일 뿐 아니라, 7월 이후 불과 두 달만의 역대 두 번째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이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 중반에서 쉽게 꺾이지 않는 데다,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1%포인트 가까이 벌어져 자금 유출과 원/달러 환율 추가 상승 압력까지 커지자 금통위로서는 빅 스텝 이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치솟는 물가·환율에 빅스텝 불가피…경기침체 우려도
◇ "9월 물가, 기대보다 덜 떨어져"…기준금리 인상 불가피
이날 금통위가 이례적 빅 스텝을 다시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108.93)는 작년 같은 달보다 5.6% 올랐다.

상승률은 8월(5.7%)에 이어 두 달 연속 낮아졌지만, 5%대 중반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1년의 물가 상승률 전망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도 9월 4.2%로 2개월째 내림세지만, 7월 역대 최고 기록(4.7%) 이후 3개월 연속 4%대를 유지하고 있다.

물가에 대한 심리적 눈높이가 높아질수록, 경제주체들은 그에 맞춰 상품·서비스 가격과 임금을 인상해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이날 금통위 회의에 앞서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대보다 적게 둔화해 빅 스텝의 확률이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한은 등은 물가 상승률이 가을 즈음 정점을 지나더라도 그 이후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실제로 그런 흐름이고, 여전히 물가 상승률이 매우 높은 수준인 만큼 빅 스텝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한은 역시 9월 소비자물가지수 통계 발표 직후 "소비자물가는 앞으로 상당 기간 5∼6%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높은 수준의 환율, 주요 산유국의 감산 규모 확대 등이 (물가) 상방 리스크(위험)로 잠재된 상태"라고 경고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도는 상황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치솟는 물가·환율에 빅스텝 불가피…경기침체 우려도
◇ 베이비스텝 대응하면 한미 금리차 1.25%p까지…환율·물가 상승 압력↑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격차 확대와 이에 따른 환율·물가의 추가 상승 위험도 이번 빅 스텝의 주요 배경이다.

미국 내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자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결국 지난달 20∼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예상대로 3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이에 따라 한국(2.50%)과 미국의 기준금리(3.00∼3.25%)는 약 한 달 만에 다시 역전됐다.

지난 7월 연준이 두 번째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뒤 미국의 기준금리(2.25∼2.50%)는 약 2년 반 만에 한국(2.25%)을 앞질렀다가 8월 25일 한국은행의 0.25%포인트 인상으로 같아졌지만, 격차가 0.75%포인트로 또 벌어졌다.

11월 초 연준의 네 번째 자이언트 스텝이 유력한 상황에서, 만약 이날 금통위가 베이비스텝만 밟았다면 사실상 두 나라의 금리 차이가 1.25%포인트(미국 3.75∼4.00%·한국 2.75%)까지 커지는 것을 용인하는 셈이다.

1.25%포인트는 역대 최대 한미 금리 역전 폭(1996년 6월∼2001년 3월 역전 당시 1.50%포인트)에 근접한 수준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원/달러 환율 상승) 가능성이 사상 그 어느 때보다 커진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미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2일 1,400원을 넘어섰고 최근 1,430원대에 이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만약 한미 금리 격차가 커지면서 환율이 더 뛰면 어렵게 정점을 통과 중인 인플레이션도 다시 들썩일 수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같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빅 스텝을 예상하면서 "연준이 9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했고, 11월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 한은도 한미 금리 격차가 계속 커지는 것을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율을 지키려면 금리를 0.50%포인트 정도 충분히 올려야 할 때"라며 "한미 금리 격차가 커졌기 때문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려야 환율을 방어할 수 있고 물가 안정에도 용이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금리를 올리지 않고 외환보유액만 풀어서 환율을 방어할 경우, 투기 세력이 달러 사재기 등에 나서 외환보유액만 더 빨리 소진될 우려가 있다"며 "정석대로 금리를 올려 환율과 물가를 잡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총재도 최근 국회 등에서 "연준의 올해 말 최종금리를 우리(한은)는 4%로 예상했지만, 지금 4.4% 이상으로 올라갔고 내년 최종금리 전망치도 4.6%로 높아졌다"며 "0.25%포인트 인상의 전제 조건이 많이 바뀌었다"고 금리 격차 확대를 우려한 바 있다.

이날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하면서, 미국과의 격차는 일단 0.00∼0.25%포인트로 좁혀졌다.

하지만 다음 달 초 연준이 4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 차이는 0.75∼1.00%포인트로 곧 다시 벌어질 전망이다.

치솟는 물가·환율에 빅스텝 불가피…경기침체 우려도
◇ "소득 안 늘고 이자만 급증…빅스텝이 가계소비 증가율 0.5%p 떨어뜨려"
한은은 이처럼 당장 물가와 환율을 잡기 위해 빅 스텝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지만, 이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기준금리를 너무 빠르게 올리면, 이자 부담이 급증하고 체감 경기도 나빠져 소비·투자 등 실물 경기가 뚜렷하게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가계 이자 비용은 급증하는데 이를 메워줄 소득의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소비 위축, 경기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0.5%포인트 빅 스텝이 올해 가계 소비 지출 증가율을 0.5%포인트가량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국제 금융시장 전문가들의 관심과 우려가 인플레이션에서 리세션(경기침체)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며 "미국·중국 경기가 둔화하면 우리나라 수출도 줄어들고, 인플레이션 탓에 실질소득이 감소하면 소비도 생각만큼 살아나지 못할 수 있다.

장기 재정계획 등으로 정부에게도 희망을 걸기 어려운 만큼, 한은도 경기 둔화를 고려해 11월 이후 빅 스텝을 또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용 총재도 앞서 6월 "빅 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물가가 올랐을 때 우리 경기나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봐야 한다"며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변동금리부 채권이 많기 때문에, 가계 이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민을 내비쳤다.

치솟는 물가·환율에 빅스텝 불가피…경기침체 우려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