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22년 초 입사한 직원입니다. 기간제 계약을 체결했고, 특이사항이 있다면 딱 하나, 나이였습니다. 그의 나이는 72살. 동년배에 비해 건장한 체격, 남다른 체력과 건강 때문에 50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만, 그는 한국전쟁 때 태어난 사람입니다. A씨는 금전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지만, 단지 일이 하고 싶어서 일터를 찾았습니다.

A씨가 체결한 계약상 업무내용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고문역’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에서 부장 직함을 달았었고, IMF 때 명예퇴직을 하고 지인을 통해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오랜 시간 일했던 이력을 인정받아, 현재 입사한 회사에서도 A씨가 갖고 있는 식견과 노하우를 활용하겠다며 채용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직원들도 “와, 완전 업계의 ‘구루’시네요” “엄청 젊어보이시네요”라며 반겼고, A씨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으쓱했습니다. 그런데 A씨가 막상 입사한 후 하게 된 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있는 그 누구도 A씨에게 경영이나 업무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젊은 직원들은 A씨를 잉여인력 취급했고, 짐을 나를 때 A씨가 친절하게 도와주려 해도, “어르신 허리 나가요”라며 A씨를 배제하였습니다.

A씨는 젊은 직원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낙담하지 않고 선제적으로 회사가 갖고 있는 여러 장단점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속도는 느렸지만 PPT나 엑셀 등 프로그램을 충분히 다룰 수 있었기에 좋은 자료를 만들 수 있었고, A씨는 자신을 채용한 대표에게 그 자료를 출력해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표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A씨에게 “저희가 요청하지 않은 업무는 하지 마세요”라며 A씨가 만든 자료를 읽지도 않고 돌려보낸 것입니다.

이쯤 되니 A씨는 대체 자신을 왜 뽑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심지어 돈을 써가며 채용까지 했는데 왜 그러는지. 이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사라지고 있고, 젊은 직원들의 냉소적인 반응도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입사한 후 1개월 동안, A씨는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는 일 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A씨는 고충상담원을 찾았습니다. 고충상담원은 A씨가 겪는 고충이 직장 내 괴롭힘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A씨는 자신을 받아주는 회사가 별로 없어 이 사안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영역으로 다루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A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보통 ‘일하는 노인’에 포커스를 두게 되면 '고령자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게 되지만, 아쉽게도 해당 법률에는 고령자에 업무를 부여함에 있어 나타나는 차별 혹은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 사안은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관한 조항들을 두고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관점에서 볼 때, 본 사안은 대표적인 ‘업무배제, 경미한 업무 부여’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로계약에서 정한 업무내용 및 A씨의 의사와 달리, A씨는 입사 후 1개월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면서 회사에서 자기효능감이 극히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아 선제적으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A씨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회사의 대응에 따라 ‘업무상 적정범위의 초과 여부’는 달리 판단될 수도 있지만, 고충상담원의 말처럼 ‘직장 내 괴롭힘일 수도 있다’라는 판단이 현재로서는 최선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A씨와 같이 고용이 전혀 안정적일 수 없는 상태(정년을 넘은 고령자, 기간제 계약직)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기는 어렵다는 마음도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있습니다. 회사에 밉보이는 것이 두려울 수 있고, 설령 미움을 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회사 내에서의 인간관계가 더 삭막해지거나, 진정한 마음과 일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A씨의 고충을 해소할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흘러간다면, A씨가 비록 부담스러워 하는 방법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절차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폭언, 폭행 등의 사건에서 양 당사자의 사실관계에 대한 기억과 인식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A씨의 현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어 실질적으로 A씨의 업무 공백 상태가 존재하는지 진단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고, 현재 업무부여 체계상의 문제점을 분석해 체계 자체를 개선하는 방법이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현재 A씨의 고충은 ‘아무런 일을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으므로, 사실은 ‘왜 일을 부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선적으로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주어진 사실관계에서는 A씨가 아직 자신에게 왜 일을 주지 않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은데, 고충상담원의 도움을 받아 이 점을 해소하게 된다면 해결책이 발견될 수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오히려 주변에서는 A씨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업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더 낫다는 오해를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노인에 대해 흔히 갖는 관념 중 하나이지요. 소극적일 것 같고,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고, 일 이야기를 하려 해도 제대로 소통을 할 수 없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오해는 회사에서 먼저 나서서 해소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게 원인 파악을 했다면, 결국 A씨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회사가 먼저 A씨를 동등한 근로자로서 활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R&R과 직무 Plan을 부여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A씨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업무내용, 업무방식, 소통해야 할 담당자 등을 명확하게 정하고, 특히 A씨의 업무를 누가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조언드립니다.

곽영준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