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비극 재발방지 위한 안전망 구축 등 정부 역할 촉구
자녀살해 후 극단선택 되풀이…"가족 중심 복지 의존 벗어나야"
부모가 어린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의 기저에는 '나의 불행이 아이에게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부모의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 확보를 위한 정부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1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밤 창원시 의창구 한 주택에서 A(여)씨와 A씨 초등학생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A씨 남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우울증 등을 앓던 A씨가 딸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앞서 9일 오후 6시께 김해시내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여성 B씨가 중상을 입은 채, 초등학생인 B씨 아들은 숨져 있는 것을 B씨의 전 남편이 발견했다.

B씨는 전 남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음날인 10일 새벽 숨졌다.

B씨가 남긴 유서에는 "사는 게 힘들어서 아들과 함께 (간다)"는 취지의 내용이 적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런 내용 등을 토대로 B씨가 대출 빚 등에 압박을 느끼다가 아들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에는 대구 달서구에서 30대 여성이 자폐증이 있던 아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하기도 했다.

7월에는 충남 아산에서 미성년 자녀 4명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40대 여성이 뒤늦게 심경 변화를 일으켜 자진 신고했다가 검거되기도 했다.

해당 여성은 생활고를 비관해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이처럼 자녀 등 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가해자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416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해 기준 아동 피해자는 14명에 평균 나이는 5.8세로 나타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부모에 의한 아동 살해는 아동학대의 가장 극단적 형태"라며 이런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종 복지정보시스템을 활용한 위기가정 발굴, 위기가정이 사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연계한 상담 등 인프라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2020년 낸 성명에서 "우리 사회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중대 범죄를 두고 부모가 '오죽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지를 떠올리며 온정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자살을 계획한 부모가 남겨질 자녀를 책임질 수 없어 살해한다는 생각은 국가의 사회 안전망에 대한 불신과도 무관하지 않고, 아동의 안녕과 성장의 책임이 국가에게 있다는 점을 부모들이 체감하지도 신뢰하지도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배상훈 우석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가족 중심주의인 한국에서는 부모에게 양육과 책임을 전가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부모는 '무조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죽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나, 나의 불행이 아이에게도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사회나 국가가 그런 역할을 대신해주지 못하니까 부모는 무조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녀와의 '심리적 일체화'를 통해 결국 극단적 범행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는 가족 중심의 복지·양육체계를 벗어나 국가도 책임을 다할 수 있게 인식과 역할에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