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임직원 경조사 시 지급하는 직장 상조금이 조의금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상조금을 생명보험금처럼 여긴다면 임직원 본인이 수령인을 따로 지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지만, 조의금으로 볼 경우 유족 측 고유재산이 된다. 많은 기업이 직장 상조회를 운영하는 만큼 대법원 판결이 미칠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직장 상조금 두고 가족 간 분쟁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한국가스공사 직원 A씨의 유족 측이 상고한 상조금 청구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직장 상조금은 유족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사망위로금 성격을 갖는다”며 “상조금을 받을 권리를 가진 자는 사망한 직원의 법정상속인이며, 상속인의 고유재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직원 A씨는 사망 10여 일 전인 2016년 1월 한 법무법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내가 사망하면 직장 상조금 수령권자를 누나인 B씨로 지정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A씨 회사 상조회 규정상 직원 본인이 사망하면 전 직원이 월 기본급에서 2%를 공제해 상조금(사망위로금)을 준다. A씨 사망 후 나오는 상조금은 2억6000만원에 달했다. A씨가 이 돈을 B씨에게 지급해달라고 유언한 이유는 B씨가 내연녀를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A씨 사망 뒤 유족과 누나 B씨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고, 수령권자로 지정받은 B씨는 회사를 상대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A씨의 부인인 C씨도 독립당사자로 B씨가 낸 소송에 뛰어들었다. C씨는 “상조금은 상속인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사망위로금으로, 상속인 고유재산이기 때문에 망인이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상조금 법적 성격 명확히 규명

핵심 쟁점은 직장 상조금의 성격이었다. 보험금과 비슷하다면 당사자가 수급권자를 따로 지정할 수 있다. 유족에게 지급하는 조의금과 비슷하다면 상조금 수급권은 상속인의 고유재산으로 봐야 한다.

1, 2심은 누나 B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선 상조금의 법적 성격이 보험금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직장 상조금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근로자의 유족을 수령권자로 하는 일종의 제3자를 위한 계약관계로 봐야 한다”며 “타인을 위한 생명보험에 준해 근로자의 사망과 동시에 유족은 수익의 의사표시 없이도 그 자신의 고유한 권리로서 사용자에 대해 상조금을 취득하지만, 근로자는 자신의 유언 등으로 그 수령권자를 지정·변경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2심에선 직장 상조금을 생명보험금과 비슷하다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수급권자를 따로 지정하는 것이 상조금 제도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재판부는 “상조회 회칙에서 상조금 수급권자를 명시적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수급권자는 사망한 회원의 법정상속인”이라며 “수급권자 지정·변경권에 대한 운영위원회의 의결 등도 없는 이상 이를 지정 또는 변경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 소송에서 유족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트리니티의 김상훈 대표변호사는 “직장 상조금의 성격을 규명한 첫 대법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상당수 공기업, 공공기관, 일반 기업 등이 직장 상조회를 운영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상조금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규명했기 때문에 상조회 회칙 등에 다른 규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이번 판결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상조회마다 회칙과 상조금 모금 시기, 방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분쟁 발생 시 해당 상조회의 상황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