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병합한 가운데 전세가 역전되지 않자 핵무기를 최후의 수단으로 쓸 거란 판단에서다.

나토 "러시아가 핵쓰면 심각한 결과 맞을 것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N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불법 합병을 규탄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위협은 아주 위험하고 부주의한 것”이라며 “푸틴이 어떤 핵이든 사용할 경우 이는 러시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우리는 핵전쟁이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나토는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과 북미지역의 외교·군사 동맹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유럽의 포르투갈 면적과 맞먹는 우크라이나 내 4개 점령지에 대한 합병을 공식화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를 지킬 것”이라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불법 합병에 대해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 지원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합병 선언에 대응하는 최선의 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인 도네츠크) 리만을 (최근) 탈환한 것은 러시아군을 몰아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일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도네츠크주 관문 도시인 리만을 탈환했다고 선언했다. 하루 뒤 완전 점령을 공언하며 우크라이나 돈바스(동부) 지역으로 진출하겠다며 추가 공세를 예고했다.

전세가 불리해진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이 전면적인 군사 대응을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나토군 최고사령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러시아 흑해 함대를 침몰시키는 것을 비롯해 러시아의 병력과 장비를 파괴할 것”이라며 “식별할 수 있는 모든 러시아 재래식 병력을 제거하기 위해 나토를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은 확전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이 곧장 미국과 나토의 참전으로 이어지진 않을 거란 설명이다. 미국은 현재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직접적인 군사 개입하지 않고 있다.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일부가 아니라서 집단방어를 요구하는 나토 헌장 5조 발동 요건이 충족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토 회원국이 피해를 볼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나토 헌장 5조는 집단안보 체제 핵심인 동맹국이 침공당하면 동맹국이 자동 개입해 공동으로 방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폭발로 인한 방사성 물질 피해가 나토 회원국으로 번지면 이는 나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은 “푸틴의 현 상황이 ‘절망적’이다. 그가 직면한 전쟁의 현실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전세는 러시아에 더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고, 전쟁터에서 전술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이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 불리해진 러시아, 에너지 인질극

전세가 불리해진 러시아는 유럽연합(EU)에 에너지를 볼모 삼아 위협하고 있다. 이탈리아 최대 가스업체인 에니는 2일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즈프롬으로부터 천연가스를 사흘째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니는 공급 중단이 4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잇따른 위협에 EU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언 EU 집행위원장은 1일 그리스와 불가리아를 잇는 천연가스관 ‘IGB’ 개통식에 참석해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갖고 있다”며 “강력한 에너지 연합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리아와 그리스를 잇는 가스관 IGB는 오랜 기간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해 온 불가리아의 에너지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됐다. 지난 7월 개통됐지만 운영되지 않다가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갔다. 연간 최대 30억㎥ 물량의 가스 수송이 가능하다. 불가리아는 천연가스 수입량의 80%를 러시아에 의존해왔다.

이 가스관은 불가리아부터 그리스를 거쳐 아나톨리안 횡단 가스관(TANAP), 아드리아 횡단 가스관(TAP)과 연결돼있다. 이 두 가스관은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큰 가스전인 샤 데니즈에서 나오는 가스를 서유럽으로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다. IGB와 이 가스관들이 연결되면서 불가리아 등 유럽 동남부 지역에까지 가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27일 개통한 ‘발틱 파이프’ 가스관도 지난 1일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발틱 파이브 가스관은 노르웨이에서 덴마크를 거쳐 폴란드로 이어지는 새 가스관이다. 발틱 파이프를 통해 노르웨이에서 폴란드로 연간 천연가스 100억㎥를 보낼 수 있고, 폴란드에서 덴마크로 가스 30억㎥를 보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난달 26~27일 발트해를 거쳐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해저 가스관인 노르드스트림-1과 노르드스트림-2에서 대형 폭발로 인한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덴마크 에너지청에 따르면 노르드스트림-2의 가스 누출은 멎었고, 노르드스트림-1도 가스관 압력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고비는 넘겼지만 사고 원인 규명은 난항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해저에 있는 가스관이라 접근이 어려워서다. 덴마크와 스웨덴 해역에서 사고가 발생했지만, 가스관 소유주가 가즈프롬이라서 조사 주체와 방식을 정하는 데에만 수일이 소모될 것으로 보인다.


원인 규명이 지연될 것으로 보이자 유럽 각국이 에너지 자산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최대 가스 공급 국가인 노르웨이는 F-35 전투기를 동원해 가스관 순찰을 강화했다. 이탈리아도 시칠리아 해협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보호하려 순찰을 강화한 상태다. 영국은 해상 정찰기를 활용해 북해 파이프라인 경계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