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은 일찌감치 인공지능(AI)·빅데이터 분야 인재 영입에 열을 올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산업계의 디지털 대전환(DX)이 가속화하면서 인력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은 AI 인재 확보전에서 크게 뒤처진 모양새다.

기업들의 우울한 현실은 좀처럼 늘지 않는 AI·빅데이터 관련 임원 수에서부터 드러난다. 29일 한국경제신문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30개사의 올해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담당 업무(직책명)에 AI, 빅데이터, 디지털 전환(DT·DX) 등의 단어가 들어가 있는 임원은 지난 6월 말 기준 43명에 그쳤다. 전체 30대 상장사 미등기 임원(3285명)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AI 전담 임원이 없는 곳은 14곳(46.7%)에 달했다.

글로벌 기업 간 AI 인재 확보전이 불붙은 2019년 말 이후 2년 반 동안 한국 30대 기업의 AI·빅데이터 담당 임원 수는 4명(2019년 말 39명→43명), 비중은 0.05%포인트(2019년 말 1.25%→1.30%)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구글 출신 한 스타트업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이나 애플 본사에선 발에 차이는 게 AI, 빅데이터 전문가”라며 “전체 임원에서 AI·빅데이터 전문가 비중도 10% 이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자 대기업 사장은 “애플은 부품을 연구개발(R&D)하는 인력만 2만 명에 육박하는데 삼성전자는 1500명 정도로 10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 고급 AI 인재 육성을 위한 생태계가 갖춰지지 않은 점, 미국 캐나다 등 AI 선진국 우수 인재가 한국 기업 근무를 꺼린다는 점 등이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범용 인력 100명보다 최고급 인재 한 명이 AI 업계와 학계 수준을 좌우한다”며 “최고 인재를 키우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