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석 성균관대 교수 신간 '독립운동 열전'서 주장
독립운동 미시사에 주목…'잊힌 무명 투사들의 이야기'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를 배제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은 마땅히 독립운동사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신간 '독립운동 열전'(푸른역사)에서 주장한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오랜 기간 공식 독립운동사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예컨대 해방 이후 정부 기금으로 처음 간행된 '독립운동사'에는 사회주의자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았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수십 년에 걸쳐 발간한 '한국독립운동사자료'에도,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에도, 독립운동과 연관된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상하이 임시정부 3대 주축 세력이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한인사회당인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결과는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임시정부 출범 3대 세력은 최대 지분을 보유한 이승만 그룹, 흥사단을 중심으로 한 안창호 그룹, 이동휘로 대표되는 한인사회당이었다.

저자는 사회주의자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이유로 "냉전과 남북분단, 그리고 군사독재의 소산"을 꼽는다.

그런 까닭에 독립운동과 사회주의를 서로 무관한 것인 양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생겼다는 것이다.

책은 그간 소외됐던 사회주의자이면서 독립투사인 인물들을 조명한다.

한인사회당의 박진순, 김립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박진순은 1919년 모스크바에 파견돼 코민테른과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혁명 지원금을 따냈다.

금액은 무려 200만루블.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2천55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박진순은 이 가운데 1차 지원금 40만루블(현재 약 510억원)을 가지고 상하이로 돌아왔다.

자금 운용은 같은 당 김립이 맡았다.

하지만 거액의 지원금을 두고 임시정부 내 계파 간 갈등이 불거졌다.

갈등이 극에 달하던 1922년 2월 초순. 김립은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에는 일제의 피살이 의심됐지만, 임시정부 내 반대파의 소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대파들은 김립의 횡령을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는 김립이 내부 권력 투쟁에 따른 희생양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철혈광복단 사건도 눈길을 끈다.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철혈광복단원들은 일본 은행의 현금 수송대를 습격, 15만원을 탈취했다.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50억원 정도. 이는 김좌진 장군이 이끌었던 북로군정서 부대를 9개나 더 편성할 수 있는 자금이었다.

철혈광복단원들은 돈을 가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단원들을 포함한 현지 독립운동가들은 곧 무기를 사 무장투쟁에 나설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무기 구매 과정에서 러시아에 주둔 중인 일본군에 단원들에 검거됐다.

밀정 엄인섭 때문이었다.

엄인섭은 안중근의 의제로 알려진, 맹렬한 독립투사였다.

그는 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것을 맹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그는 일본이 조선 독립군에 심어둔 간자였던 것이다.

일본 정부 공식문서를 보면 엄인섭은 1908년부터 1922년까지 14년간이나 밀정으로 암약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법정에서도 당당히 항변했던 사회주의자 박헌영과 고문에 희생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길양, 단식투쟁으로 옥사한 이한빈, 조선공산당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김재봉 등 다양한 인물을 조명한다.

아울러 사회주의자뿐 아니라 주류 독립운동사에서 소외된 무명인들과 독립운동 열사들의 가족 이야기도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제국주의 지배에 맞선 피억압 민족의 해방운동사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 1권 = 380쪽. 1만9천원, 2권 = 424쪽. 1만9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