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부지 선정 사실상 불가능…마포 등 현존 시설 확대 방침에 자치구 반발
서울 소각장 새로 못찾고 기존 부지에…주민설득·용량확보 숙제
서울시가 신규 자원회수시설(생활폐기물 소각장) 건립을 위한 새 부지를 끝내 찾지 못하고 기존 시설이 있는 마포구 상암동에 규모를 늘려 다시 짓겠다는 방침을 31일 발표했다.

서울에서 폐기물 처리를 위한 대규모 부지를 새로 선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내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당장 2026년부터 폐기물 매립이 금지돼 소각장 추가 건립이 이뤄져야 하지만, 기피시설을 받겠다고 나서는 자치구가 없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주민 반발을 그나마 최소화하고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고육지책을 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부지가 있는 마포구에서는 지역 형평성에 위배된다며 백지화를 요구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내놓고 있어 향후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사업 추진에 관건이 될 전망이다.

또 이번 발표대로 기존 부지에 다시 짓는 시설로는 소각 용량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 우여곡절 끝에 기존 부지에 재건립…마포구는 백지화 요구
서울시 등에 따르면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2026년 1월 1일부터 수도권매립지에 생활폐기물을 소각하지 않고 직접 매립하는 것이 금지됐다.

현재 마포를 포함한 서울 4개 광역 자원회수시설의 소각 용량이 부족해 하루 1천t의 폐기물이 인천의 수도권매립지에 그대로 매립되고 있는데, 2026년부터 이를 못 하게 되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서울시는 광역자원회수시설을 추가 건립하기로 하고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입지를 공모했으나 신청한 자치구는 없었다.

폐기물 소각장이 대표적인 혐오 시설로 인식된 탓이다.

그러자 시는 2020년 12월 주민대표, 전문가, 시의원 등이 참여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꾸리고 최적의 입지 후보지를 물색해왔다.

후보지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시와 입지선정위 간 견해차로 타당성 조사가 계속 지연됐고, 입지 후보지로 강동구가 거론된다는 말이 나오자 구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시는 결국 기존 시설이 있는 마포구 상암동을 부지로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입지선정위의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거쳤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마포구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구는 서울시의 발표 직후 박강수 구청장 명의로 성명서를 내고 이번 결정의 백지화를 요구했다.

박 구청장은 "이미 2005년부터 광역자원회수시설을 운영해오며 주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감수해온 마포구에 새로운 시설을 조성하는 것은 지역 형평성에 크게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존 자원회수시설이 있는 자치구는 입지 선정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암동 주민 이모(45) 씨는 "너무 갑작스럽다"며 "최근 수년간 지역 발전이 정체돼 있는데 소각장까지 짓겠다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마포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구의원들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신규 광역자원회수시설 건립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법(폐촉법)상 입지선정위가 독립적으로 후보지를 결정하게 돼 있어 마포구에 사전에 공유할 수 없었고, 최종 결정이 난 직후부터 구와 협의하고 있다"며 "다음 주부터 20일간 주민 공람·공고에 들어가는데 주민이 열람을 원하면 평가 기준 등을 충분히 알리겠다"고 말했다.

당초 시는 1순위 외 다른 자치구 후보지의 점수나 순위는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었으나, 불투명한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자치구 이름을 익명 처리해 5위까지 점수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마포구는 94.9점을 받아 92.6점을 받은 2순위 후보지와 근소한 격차로 1순위가 됐다.

3·4·5순위 후보지의 점수는 각각 91.7점, 87.5점, 84.9점이었다.

서울 소각장 새로 못찾고 기존 부지에…주민설득·용량확보 숙제
◇ 다른 기존 시설도 현대화해 계속 가동 방침…또 다른 갈등 불가피
이번에 신규 건립되는 소각장의 처리 용량은 1천t이다.

같은 부지의 기존 소각장 용량 750t과 비교하면 250t이 늘어난다.

시는 당초 2026년까지 1천t 규모의 소각장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계획만으로는 처리 용량이 여전히 750t 부족한 상황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는 다른 지역의 기존 자원회수시설을 현대화해 처리 용량을 늘리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폐촉법에 따르면 기존 시설의 30% 이내 규모로 증설할 경우에는 별도 입지선정위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시는 설명했다.

마포구 외 기존 시설은 ▲ 양천구 목동(1996년 건립·하루 처리용량 400t) ▲ 노원구 상계동(1997년 건립·하루 처리용량 800t) ▲ 강남구 일원동(2001년 건립·하루 처리용량 900t)이다.

시 관계자는 "아직 관련 용역이 진행 중이지만, 기존 시설의 현대화로 충분히 750t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양천과 노원 시설은 전면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 시설의 현대화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에 시는 마포구에 2027년 새 시설이 완공되더라도 기존 시설을 2035년까지 함께 가동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유해 물질이 과도하게 배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자 시는 "현재도 유해 물질이 법정 기준의 몇 배 이하로 적게 발생하고 있다"며 "발달한 기술을 적용하면 유해 물질 관리에 문제는 없을 것이고, 전광판을 통해 주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알리겠다"고 설명했다.

시의 발표대로라면 자원회수시설의 가동 연한이 30년 정도임을 고려할 때 다른 기존 시설도 현대화를 거쳐 앞으로 40년가량 더 가동되는 셈이다.

아무리 지하화·현대화해 유해 물질 배출 등 부작용을 줄이고 다른 주민편익시설을 짓는 등 인센티브를 주더라도 시설 이전을 원하는 자치구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당장 시설이 있는 지역 중 하나인 양천구는 "구청장 공약 사업으로 기존 자원회수시설의 이전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시설 현대화와 관련해 시와 협의할 이유나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원회수시설은 제때 확보하지 않으면 '쓰레기 대란'을 불러올 수 있는 필수 시설인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이를 수용하려는 곳이 어디든 있어야 하는데, 이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최대한 갈등이나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기존 부지를 활용하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고 본다"면서 "마포구의 폐기물 처리 비용을 무료로 해주고 인접 지역으로부터 2배로 받는 등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주민이 우려하는 부분을 투명하게 공개해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일본 무사시노시에는 시청 바로 앞과 학교 주변에 폐기물 소각장이 있고 일반 시민에 개방도 한다.

눈앞에 안 보여야 하는 시설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 필수 시설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도 이와 같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