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일상 반복 속에서 좋은 생각 나온다"
"목표가 구체적일수록 마음 경직돼"
기자가 '필즈상을 받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냐'고 묻자, "그렇죠. 제 일상으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계 수학자 최초로 필즈상의 영예를 안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가 이번 여름 마지막 국내 일정으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며 털어놓은 심경이다.

허 교수는 29일 그의 모교인 서울대 수리과학부의 한 교실에서 최근 두 달간 '스타 수학자'로 살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을 편안한 분위기로 솔직히 밝혔다.

허 교수는 필즈상을 지난 7월 5일 받고 나서 사흘 후 한국에 입국해 두 달 가까이 초등학생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국내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나 대중강연을 하고 간담회에 참석하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허 교수는 "이전의 생활 패턴에서 많이 벗어나 새로운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이게 나인가' 싶은 순간이 오기도 하고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지난 두 달간 참여한 여러 행사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느냐'는 물음에도 비슷한 취지의 답을 했다.

그는 지난 8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별 간담회에서 '밸런스 게임'(두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게임)을 할 때, '필즈상 수상'과 '100억 원 수령' 중 후자를 선택했다.

허 교수는 "(필즈상 수상 이후 바빠져) 연구를 오래 안 하다 보면 예전만큼 한 문제에 파고들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한편에 있다가 주저하지 않고 100억 원을 고르게 됐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아 조금 후회되기도 하지만 지금도 100억 원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이어 "필즈상을 받는 게 제가 소속된 공동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지만, 나 개인에게 필즈상이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모르겠다"면서도 "가끔 쉬는 시기를 가지는 것이 새로운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는 지난 18일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과학축제'에서 열린 대담에서 어린 학생에게서 질문을 받았을 때를 꼽았다.

그는 "청중의 대부분이 초등학생이었다"며 "대담 이후 첫 질문이 '첫사랑을 얘기해달라'는 것이었는데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라 어버버하다 (아내가 듣기에) 적절하지 못한 대답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허 교수는 자신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공부를 제일 열심히 잘할 수 있는 때는 매일 똑같은 일상이 견고하게 잡혀있을 때"라며 "일상의 반복이 충분히 이뤄질 때 좋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필즈상을 받기 전 그는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 명상이나 운동을 하며 고요한 새벽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뒤 아침을 먹고 학교에 출근해 연구에 매진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매년 여름방학이면 한국의 고등과학원에 와서 학기 중의 일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도 고등과학원에 오긴 했지만 대중강연 등 행사로 예년과 달리 무척 분주한 일정을 보냈다.

허 교수는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구체적인 목표를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뭘 해야겠다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목표가 구체적일수록 마음이 경직된다"며 "오히려 목표를 정확히 두지 않으면 지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도를 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31일 미국으로 돌아가 프린스턴대에서 연구와 강의를 병행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