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수당 올리고 전담기관 생겨도…기댈 곳 없는 자립준비청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대학진학해도 생활고에 어려움…상의할 어른 없어 좌절감도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심리지원 등 생애주기별 정책 필요"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때, 돈이 없을 때…. 그때마다 자퇴를 생각했어요.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되지 않으니 부담이 컸고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 같아요.
"
최근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을 앞두고 있던 청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잇달아 전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현실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최근 자립준비청년(보호시설의 보호 종료 5년 이내 청년)을 위한 자립수당을 월 30만원에서 35만원으로 올리고 자립지원전담기관 설치를 시작하는 등 지원 강화에 나섰지만,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이나 심리정서지원 등 더욱 세심한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꿈 좇아 대학진학했지만 돌아온건 생활고…높은 현실의 벽
28일 복지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광주의 한 대학교에서 올해 입학한 새내기 A(18)군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학 진학 시점은 보호종료 아동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설을 퇴소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성인이 된다는 설렘도 퇴소 후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교차해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많은 보호종료 아동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취업을 택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들은 A군처럼 대학 진학을 택한다.
큰 희망과 기대를 품고 시작하는 대학생활이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청소년학회가 지난 2월 발간한 청소년학연구를 통해 공개한 대학 진학 보호종료아동의 심층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간호학과를 다니다 자퇴한 B씨는 인터뷰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부모님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입학 1년이 지나지 않아 B씨는 꿈과 멀어졌다.
그는 "월세부터 대학등록금, 생활비까지 혼자 책임져야 했다"며 "근로장학생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도 돈은 모이지 않고 결국 학교에 다닌 지 1년 만에 자립정착금, 디딤 씨앗 등 지원금을 다 쓰고 남은 게 없었다"고 말했다.
B씨는 "어느 날부터인지 왜 대학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게 됐다.
누군가가 저에게 대학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거나, 꼭 졸업해야 한다고 말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지만, 혼자서는 힘들었고 결국은 자퇴를 했다"고 말했다.
역시 자퇴를 택한 C씨는 "퇴소할 때 받은 자립정착금을 잘 모아두려고 했는데 막상 학교에 다니려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돈이 들었다.
생활비로 자립정착금을 다 썼는데도 돈이 부족했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마저도 학교 시간에 맞춰야 하니 돈이 늘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 마음을 터놓고 상의를 할 지지기반이 없는 현실도 이들을 힘들게 한다.
D씨는 "휴학을 선택하고 자퇴하기까지 함께 결정해줄 어른이 없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친구에게 얘기해도 결정에 도움이 되기보단 시간만 흐를 것 같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고 결정했다"고 했다.
선택을 후회하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자퇴 후의 심경에 대한 질문에 E씨는 "이런 것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는데 다른 전공을 하든, 일을 하든 나는 또 포기하게 될까,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괴롭혔다"고 털어놨다.
보고서는 "공통적으로 깊이 있는 진로 탐색의 시간 없이 진로를 결정한 데다 감당할 수 없는 생활고, 기대했던 대학생활과는 다른 생활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거나 제3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관찰하지 못했고, 결국 자발적으로 학업을 중단했음에도 자책감을 가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 "회복탄력성 키워줘야…개별 욕구 맞는 프로그램 필요"
2020년 보호종료아동 3천104명을 대상으로 한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자아존중감과 삶의 만족도는 일반 청년에 비해 낮았고, 자살 생각 경험 비율은 높았다.
자아존중감은 0~10점 척도에서 2.9점으로 일반가구(2019년 한국복지패널조사)의 3.22점보다 낮았다.
삶의 만족도는 5.3점으로 2017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서 19~29세의 6.5점보다 낮았다.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은 자살생각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가정외보호 아동의 보호 중 경험과 회복탄력성' 보고서에서 "원가정으로부터의 분리와 이별이라는 트라우마적 위기를 이미 경험한 가정외보호 아동은 약 12년의 장기 보호 후 보호종료와 자립이라는 또다른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며 이들이 어려움이나 역경에 긍정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회복탄력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연장보호 아동을 포함한 17∼19세 보호종료아동 876명을 대상으로 보호·자립지원서비스의 경험이 회복탄력성에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학업성취와 사회적 지지가 자기효능감과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업성취의 경우 학업 성적이 얼마나 올랐는지보다는 성적이 조금 올랐더라도 아동이 그것을 얼마나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식하는지가 중요하며 사회적 지지는 주변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경험을 뜻한다.
반면 자립지원프로그램과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사례관리는 자기효능감이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 연구원은 "현행 자립 지원프로그램은 아동의 개별적인 상황과 자립 욕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체험보다는 이론과 교육 위주의 집단 프로그램으로 운영돼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인력을 확충하고 자립 지원프로그램의 내용을 내실 있게 정비해 아동의 개별 욕구에 맞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정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보건복지포럼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보호아동은 원가족과의 이별과 같은 부정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아동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정서행동 문제는 아동보호의 전 과정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정서적 어려움은 보호종료 후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지만, 보호종료 후 자립과정에서의 걱정과 불안, 외로움과 고립감이 가중될 수 있다"며 "보호과정에서 개별 아동·청소년의 심리정서적 지원을 위한 표준화 절차를 마련하고, 보호와 자립지원의 연속선상에서 심리 정서적 지원이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심리지원 등 생애주기별 정책 필요"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때, 돈이 없을 때…. 그때마다 자퇴를 생각했어요.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되지 않으니 부담이 컸고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 같아요.
"
최근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을 앞두고 있던 청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잇달아 전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현실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최근 자립준비청년(보호시설의 보호 종료 5년 이내 청년)을 위한 자립수당을 월 30만원에서 35만원으로 올리고 자립지원전담기관 설치를 시작하는 등 지원 강화에 나섰지만,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이나 심리정서지원 등 더욱 세심한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꿈 좇아 대학진학했지만 돌아온건 생활고…높은 현실의 벽
28일 복지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광주의 한 대학교에서 올해 입학한 새내기 A(18)군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학 진학 시점은 보호종료 아동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설을 퇴소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성인이 된다는 설렘도 퇴소 후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교차해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많은 보호종료 아동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취업을 택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들은 A군처럼 대학 진학을 택한다.
큰 희망과 기대를 품고 시작하는 대학생활이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청소년학회가 지난 2월 발간한 청소년학연구를 통해 공개한 대학 진학 보호종료아동의 심층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간호학과를 다니다 자퇴한 B씨는 인터뷰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부모님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입학 1년이 지나지 않아 B씨는 꿈과 멀어졌다.
그는 "월세부터 대학등록금, 생활비까지 혼자 책임져야 했다"며 "근로장학생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도 돈은 모이지 않고 결국 학교에 다닌 지 1년 만에 자립정착금, 디딤 씨앗 등 지원금을 다 쓰고 남은 게 없었다"고 말했다.
B씨는 "어느 날부터인지 왜 대학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게 됐다.
누군가가 저에게 대학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거나, 꼭 졸업해야 한다고 말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지만, 혼자서는 힘들었고 결국은 자퇴를 했다"고 말했다.
역시 자퇴를 택한 C씨는 "퇴소할 때 받은 자립정착금을 잘 모아두려고 했는데 막상 학교에 다니려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돈이 들었다.
생활비로 자립정착금을 다 썼는데도 돈이 부족했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마저도 학교 시간에 맞춰야 하니 돈이 늘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 마음을 터놓고 상의를 할 지지기반이 없는 현실도 이들을 힘들게 한다.
D씨는 "휴학을 선택하고 자퇴하기까지 함께 결정해줄 어른이 없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친구에게 얘기해도 결정에 도움이 되기보단 시간만 흐를 것 같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고 결정했다"고 했다.
선택을 후회하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자퇴 후의 심경에 대한 질문에 E씨는 "이런 것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는데 다른 전공을 하든, 일을 하든 나는 또 포기하게 될까,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괴롭혔다"고 털어놨다.
보고서는 "공통적으로 깊이 있는 진로 탐색의 시간 없이 진로를 결정한 데다 감당할 수 없는 생활고, 기대했던 대학생활과는 다른 생활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거나 제3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관찰하지 못했고, 결국 자발적으로 학업을 중단했음에도 자책감을 가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 "회복탄력성 키워줘야…개별 욕구 맞는 프로그램 필요"
2020년 보호종료아동 3천104명을 대상으로 한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자아존중감과 삶의 만족도는 일반 청년에 비해 낮았고, 자살 생각 경험 비율은 높았다.
자아존중감은 0~10점 척도에서 2.9점으로 일반가구(2019년 한국복지패널조사)의 3.22점보다 낮았다.
삶의 만족도는 5.3점으로 2017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서 19~29세의 6.5점보다 낮았다.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은 자살생각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가정외보호 아동의 보호 중 경험과 회복탄력성' 보고서에서 "원가정으로부터의 분리와 이별이라는 트라우마적 위기를 이미 경험한 가정외보호 아동은 약 12년의 장기 보호 후 보호종료와 자립이라는 또다른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며 이들이 어려움이나 역경에 긍정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회복탄력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연장보호 아동을 포함한 17∼19세 보호종료아동 876명을 대상으로 보호·자립지원서비스의 경험이 회복탄력성에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학업성취와 사회적 지지가 자기효능감과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업성취의 경우 학업 성적이 얼마나 올랐는지보다는 성적이 조금 올랐더라도 아동이 그것을 얼마나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식하는지가 중요하며 사회적 지지는 주변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경험을 뜻한다.
반면 자립지원프로그램과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사례관리는 자기효능감이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 연구원은 "현행 자립 지원프로그램은 아동의 개별적인 상황과 자립 욕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체험보다는 이론과 교육 위주의 집단 프로그램으로 운영돼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인력을 확충하고 자립 지원프로그램의 내용을 내실 있게 정비해 아동의 개별 욕구에 맞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정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보건복지포럼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보호아동은 원가족과의 이별과 같은 부정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아동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정서행동 문제는 아동보호의 전 과정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정서적 어려움은 보호종료 후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지만, 보호종료 후 자립과정에서의 걱정과 불안, 외로움과 고립감이 가중될 수 있다"며 "보호과정에서 개별 아동·청소년의 심리정서적 지원을 위한 표준화 절차를 마련하고, 보호와 자립지원의 연속선상에서 심리 정서적 지원이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