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K 서울, 에릭 오 감독 신작 '오리진' 상영
"나 여기 왜 있어요?"…미술관 외벽에 던져진 근원의 질문
'나는 무엇인가? 나는 여기에 왜 있는가?' 이런 질문에 결국 답을 알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의문을 가지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

아카데미가 주목한 한국계 미국인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 오(38)는 신작 '오리진(Origin)'에서 근원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러닝타임 5분의 짧은 이 애니메이션은 미술관 외벽에서, 연속으로 재생되면서 질문의 무게를 더한다.

코오롱의 문화예술공간 '스페이스K 서울'의 외벽에 24일 밤 상영된 '오리진'은 밤의 공원에서 깊은 사색에 빠지게 했다.

"나 여기 왜 있어요?"…미술관 외벽에 던져진 근원의 질문
존재의 근원과 질서를 순환의 관점에서 해석한 이 작품은 둥근 물체의 균열로 시작한다.

얼굴처럼 보이는 흰 물체는 눈이 연상되는 두 구멍이 있다.

선도 악도 아닌 순수하게 보이는 얼굴은 곧 검은 눈물을 흘리고, 곳곳에 멍이 든다.

진흙탕이 뒤덮은 것 같은 구(球)는 응축되고 내면에 빛을 가뒀다가 폭발한다.

커지는 음악과 함께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던 무채색 물체는 화려한 색감을 갖게 되면서 꽃처럼 피어난다.

약 1분간 화려한 장면이 펼쳐지다가 다시 빛은 사그라들고 시원(始原)의 고요함으로 돌아가며 흰 원만 남는다.

"나 여기 왜 있어요?"…미술관 외벽에 던져진 근원의 질문
오 감독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아름다움, 희망, 행복과 함께 무의미함, 공허함, 절망 등 상반된 감정들을 추상 회화와 같은 화면에 담아냈다고 밝혔다.

그는 전시장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오리진은 전작 '오페라'와 함께 약 6년 전에 구상한 작품"이라며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사는 이곳은 정말 나아지고 있는지 등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던졌고 자연스럽게 구상이 됐다"라고 말했다.

오페라는 지난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품으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 종교, 이념 간의 갈등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오리진은 오페라와 연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같은 세계관을 구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근원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추상성의 장점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리진의 끝을 처음과 비슷한 장면으로 만들어 순환을 강조한다.

다만, 작품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드러나 선형적 구조가 강조된다.

근원을 찾는 질문에 종말을 제시한 것은 다소 어색한 느낌을 준다.

오 감독은 "근원에 관한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것은 오만한 것 같고 이 작품은 질문에 가깝다"며 "왜 이 작품이 오리진인지도 관객이 알아서 해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 여기 왜 있어요?"…미술관 외벽에 던져진 근원의 질문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픽사에서 '인사이드 아웃' 등에 참여했다.

오 감독은 오페라에 이어 '나무'도 94회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오리진은 12월 2일까지 매일 밤(19시30분∼11시) 스페이스K 서울 건물 외부 벽면과 인근 바닥에서 상영된다.

"나 여기 왜 있어요?"…미술관 외벽에 던져진 근원의 질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