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어제 30대 기업 인사·노무 담당 임원과 만나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에 우선적으로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주 52시간제 보완과 직무·성과급제 확산에 노동개혁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것으로 지난 6월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새 정부 고용부 장관과의 첫 공식 간담회에 기대가 컸던 기업들의 실망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을 뿐 정작 듣고 싶은 파견법·노조법 개정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못 들은 것이다.

이 장관은 “근로시간 운용에 노사 자율적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역설했다.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사의 노력을 뒷받침하겠다”고도 했다. 이 장관과 기업 간 온도 차이는 손경식 경총 회장의 발언에서도 느껴졌다. 손 회장은 “법원의 사내도급 불법 파견 판결이 늘면서 산업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32개 업종으로 제한된 파견근로 허용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점거 금지, 불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등 기업계의 숙원 과제도 거듭 설명했다.

이 장관 말대로 근로시간 및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해 중요한 일이고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민감한 이슈인 근로시간과 임금구조 개편에 노사 합의를 강조한 것은 주무장관으로서 안일한 모습으로 비친다. 노조의 불법 점거와 파업, 떼쓰기에 몸살을 앓고 있는 기업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50일이 넘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불법 점거 파업이 끝난 게 엊그제인데, 민주노총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하이트진로 본사에 시너를 들고 무단침입해 점거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대제철 노조는 당진공장 사장실을 100일 넘게 점거 중이다.

고용부가 거대 노조와 야당의 반발을 의식해 골치 아픈 현안보다는 손쉬운 과제를 택해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새 정부 노동개혁이 알맹이는 없이 변죽만 울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이다. 지난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조법 개정을 통해 노조의 단결권은 크게 강화한 반면 경영계의 대응 수단은 마련하지 않아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 장관은 하이트진로 본사 불법 점거 현장에 나가 노조의 무법, 떼법을 확인하고 다시 기업들의 절절한 노동개혁 요구 목소리를 들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