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년 전 만화풍 동물 그림으로
구석기 동굴벽화, 왜·어떻게 그렸나


구석기인들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그림을 잘 그렸던 걸까요. 배운 것도 없고, 먹고 살기도 바빴을 텐데 그림을 왜 그렸을까요. 지난 주말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 마당에 수만년 전 일을 정확히 알 수는 없겠죠. 그래도 여러 고고학·미술사가들의 주장 중 정설로 취급받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지 한번 살펴보시죠.
곰브리치 “뭘 모르니까 잘 그렸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면 현대인들도 구석기인들만큼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어렵습니다. 우리야 펜과 종이 등 질 좋은 재료가 근처에 널려 있지만, 구석기인들은 돌로 동굴 벽을 긁어내고 흙을 비롯한 여러 재료로 물감을 만들어서 벽에 발랐죠. 우리가 갖고 있는 원근법 등 그림 관련 상식도 구석기인들은 몰랐습니다.
사람이 보통 뭔가를 볼 때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샅샅이 훑지 않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거나 평소에 신경썼던 점만 확인하고 넘어가지요. 정보 처리를 빠르게 하기 위해섭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여겨 봤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크게 그리고, 제대로 안 보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 작게 그리지요. 아는 대로 그리는 겁니다. 여기 13세기 영국인이 그린 박쥐 그림이 그런 예입니다. 박쥐는 다리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박쥐의 본질을 ‘쥐 같은 얼굴’과 특징적인 날개로 파악한 거죠.
반면 구석기인들은 이런 식으로 본질을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는 게 곰브리치의 설명입니다. 본질을 요약하는 최적화 과정을 거치지 않다 보니 효율적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역설적으로 상대방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1만년 후 이집트인들이 그린 동물 그림들을 보면 이런 설명이 좀 더 실감이 나실 겁니다. 사실성으로 보면 구석기 동굴벽화만 못합니다만, 곰브리치의 설명에 따르면 지적 활동 수준은 훨씬 높습니다. 고양이가 채찍을 들고 기러기들에게 일을 시키는 그림, 고양이들이 쥐를 극진히 대접하는 그림 등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치·사회상을 꼬집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뭐 이런 뜻이지요.

심심해서? 사냥 연습삼아? 왜 그렸을까
구석기인들이 그림을 왜 그렸는지 그 이유를 둘러싸고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첫번째는 ‘유희’ 입니다. 심심해서 재미로 그렸다는 거죠. 단순하지만 설득력 있는 가설입니다.“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뭐가 그리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돌았겠느냐”는 반박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구석기인들의 일상생활은 꽤 괜찮았습니다. 구석기인들은 나무 열매나 잡아먹을 동물이 충분한 지역에만 살았습니다. 해가 뜨면 나가서 열심히 사냥하거나 채집 활동을 하고, 먹을 만큼 먹은 뒤 나머지는 동굴로 싸와서 푹 쉬면 됐습니다. 냉장고가 없으니 열심히 일한 결과물을 저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일할수록 맹수와 마주치거나 발을 헛디뎌서 다치거나 죽을 위험만 늘어나는 환경이었죠.

물론 ‘일상 생활’에 한정했을 때 얘깁니다. 그때는 맹수에게 잡아먹힐 확률, 벼락맞아 죽을 확률, 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았으니까요. 무엇보다도 15세가 되기 전 사고나 병으로 죽을 확률이 너무 높았습니다.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70세까지 사는 사람도 많았지만, 어릴 때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 평균 수명은 25세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주술적 목적’은 가장 유력한 가설 중 하나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종교적 의식을 하면서 사냥이 잘 되기를 바란 거지요.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대부분 천장에 그려져 있습니다. 천장을 향해 창던지기 연습을 잘못 했다가는 큰일나겠죠. 사냥용으로 보기 어렵단 얘깁니다. 재미로 그렸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천장에 그림을 잘 그리려면 아마 누군가가 가까이서 횃불을 비춰주어야 했을 겁니다. 내가 재밌자고 다른사람에게 뜨거운 횃불을 밑도 끝도 없이 들고 있으라고 하기는 쉽지 않죠.
어쩌면 이 모든 이유가 다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심심해서 그림을 그려보고, 그러다 보니 더 잘 그리게 되고, 짓궂은 누군가가 그림에 돌을 던져 봤다가 ‘연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특별히 잘 그린 그림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풍습도 생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새로운 발견들, 예술 본능을 말하다
이 모든 게 정답은 아닙니다. 구석기시대가 워낙 옛날이라, 새로운 연구결과 하나에도 기존 학설들이 휙 뒤집히곤 해서지요. 예컨대 2018년 <네이처>지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에서 7만년 전 원시인이 그린 추상화가 발견됐다는 연구결과가 실렸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은 계속 바뀔 겁니다. 하지만 몇만년 전 사람들이 그림을 그린 정확한 이유와 사정이 뭐든 간에, 사람의 본성에는 ‘예술 본능’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